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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보살의 성지 오대산, 그 안에 숨은 선도문화의 흔적 (K-스피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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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26-07-10 08:52 조회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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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보살의 성지 오대산, 그 안에 숨은 선도문화의 흔적

  •  허성관 한국유라시아연구원 원장
  •  
  •  승인 2026.07.09 14:48
 

선도문화 답사기 2

선‧불 융합의 현장 오대산

7시 반에 아침 식사 예정이다. 6시에 일어났다. 백사장이 1km 쯤 되어 보이는 직선이다. 상쾌하기 그지없다. 체조로 충분히 몸을 풀고 펜션 이웃 식당에 도착했다. 예약한 우리 일행 자리만 빼고 조그만 식당에 손님이 가득하다. 황태국이 딱 내 입맛에 맞다. 역시 식당 성업 비결은 맛인가 보다. 일행이 운전해온 승용차에 8시 조금 넘어 나누어 타고 오대산으로 향했다. 아마도 오늘은 하루 종일 오대산 계곡을 헤매야 할 듯하다. 동해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오대산 월정사 입구까지 한 시간 정도 걸려 도착했다. 계곡과 산에는 온통 절일 테니 오늘 불교 공부 제대로 해보자고 다짐하면서 주차장에 내렸다. 필자는 불교에 관련된 구체적인 지식에는 그야말로 문외한이다. 주차장이 넉넉해서 좋다. 오늘 답사 예정은 월정사 ⭢ 상원사 ⭢ 적멸보궁 ⭢ 월정사 박물관 순이다. 아마도 적멸보궁은 가기 어려울 것이다. 거리 때문이다.

청춘영화 촬영에 자주 나올 정도로 월정사 입구 전나무 길은 역시 명품길이다. 전나무 대부분이 아름드리다. 더운 여름이라면 이 길의 고마움을 확실히 알 것이다. 일주문 들어서기 전 계곡에 널찍하게 개천이 흐르는데 열목어(熱目魚)가 서식한다고 안내판에 쓰여 있다. 눈에 열이 많아(?) 1급수 찬물에만 산다는 물고기로 천연기념물이다. 열목어, 조금은 반가운 이름이다. 60여 년 전 강원도 양구에서 군대 생활하면서 방산면 수입천에서 열목어를 본 적이 있어서다. 제법 크고 연어처럼 생긴 물고기다. 월정사 방문이 두 번짼데 전혀 기억에 남은 것이 없다. 단풍철에 방문한 것 같은데 지금은 신록의 계절이라 그런가? 나이 탓일 것이다.

불교에는 보살이 많다. 관음보살 문수보살 지장보살 보현보살 등이다. 스님들이 여신도를 ‘보살님’으로 부르는데 이 호칭도 뭔가 석연하지 않다. 전나무 길을 걸으면서 동행한 정경희 교수에게 물었더니 보살(菩薩, Bodhisattva)은 ‘깨달음은 이루었으나 부처가 되지 않은 존재’라고 한다. 알듯 말듯 한데 ‘중생과 부처 사이에 있는 존재로서 중생 구제에 애쓰는 존재’로 이해가 된다. 사실 필자는 ‘보디사뜨바’를 부처로 알고 있었는데 부처가 아니라 보살이라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이 없지만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즉,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위대한 존재가 보살인가 보다. 관음보살은 자비의 보살, 문수보살은 지혜의 보살, 지장보살은 구제의 보살, 보현보살은 부처님의 덕과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보살이라고 한다. 그러면 ‘아미타불’은 어떤 부처냐고 물었더니 사람이 죽어서 가는 서방 정토(淨土)를 관장하는 부처라고 한다. 이 간단한 설명으로 불자들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암송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죽으면 서방정토 극락으로 인도하시고, 살아서는 한없는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주문이구나. 조금은 이기적인 기도문이다. 절의 각 전각 안에는 탱화가 자리한다. 탱화 협시보살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무엇을 타고 있는지 보면 알 수 있다고 정 교수가 설명해준다. 사자를 탄 보살은 문수보살, 흰 코끼리를 탄 보살은 보현보살이라고 한다. 특히, 불전에 시주가 가장 많은 전각이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전(地藏殿)이라고 한다. 이유는 지장보살이 지옥에서 마지막 한 사람 중생까지 구제하는 보살이어서 죽어서라도 구제받으려는 염원으로 시주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사진 10. 월정사 적광전, 팔각9층석탑, 석조보살좌상. 출처 국가유산청
사진 10. 월정사 적광전, 팔각9층석탑, 석조보살좌상. 출처 국가유산청

일주문을 들어서니 여느 절과 다름없이 사천왕이 버티고 있다. 모두 무시무시하고 괴기한 모습인데 절을 지키는 수호신일 것이다. 힌두교의 ‘비와 천둥의 신’ 인드라를 불교에서 수호신으로 모셨는데 이 신이 사천왕의 우두머리라고 한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자 선불(仙佛) 융합 현상으로 민중들이 천신(天神)으로 모시던 환국 시조 환인(桓因)을 사천왕 우두머리와 동일시하는 제석(帝釋)신앙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계단을 오르자 ‘달의 정기를 품고 있다’는 의미를 지닌 월정사(月精寺) 중앙이다. 이 절은 한국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다. 적광전(寂光殿)이 서있고, 마당에 팔각구층석탑에 석조보살좌상이 기도하는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월정사는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적광전은 수차례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다가 6.25 중 불타 1964년에 중건한 전각이다. 적광전은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화이불사(華而不奢)에 딱 어울리는 전각이다. 대부분 절의 중심이 되는 전각은 대웅전인데 여기는 적광전이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인데 이곳 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이다. 부처님은 석가모니불 한 분인 줄 알았는데 아미타불과 비로자나불까지 세 분이다. 막연히 아는 미륵불까지 감안하면 부처님이 네 분이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불교는 부처를 세 관점에서 인식하는 삼신불(三身佛)을 신앙한다고 한다. 우주의 영원한 진리 그 자체가 법신불(法身佛)로서 비로자나불이고, 오랜 수행으로 공덕을 쌓아 나타난 부처가 보신불(報身佛)로서 아미타불이며, 중생을 구제하고자 인간으로 태어난 분이 화신불(化身佛)로서 석가모니불이라고 한다. 잘 알 수 없으나 진리, 수행, 성불한 인간 그 자체가 모두 부처이며, 이 셋이 바로 불교의 상징으로 신앙 대상인 듯하다.

적광전 정면에는 팔각9층석탑과 석탑에 기도하는 석조보살좌상이 자리하고 있다. 둘 다 대한민국 국보다. 모두 고려 초기에 제작되었다고 하니 천년 세월을 견뎌왔다. 탑과 보살이 기도하는 구도는 강릉 신복사 3층석탑과 보살상 구도와 같으니 월정사와 신복사가 서로 상통하는 바가 있었음이 확실하다. 팔각9층석탑은 멋진 탑인데 특히 윗부분이 섬세하나 현장에서는 자세히 살펴볼 수 없다. 복원한 부분이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하니 오후에 자세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석조보살좌상 전신은 보통 사진기로 찍어서는 확인이 안 된다. 국가유산청이 게시한 <사진 1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왼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미소 지으며, 머리를 반듯하게 한 인자한 모습이다. 참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다. 특히, 백제 시기 새긴 서산 마애삼존불 미소와 비교하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오한 미소다. 월정사에는 적광전을 중심으로 전각들이 가득하다. 대단히 큰 절이다. 보살님 얼굴은 물론 모든 게 넉넉해 보이는 절이다. 

사진 11.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출처 국가유산청
사진 11.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출처 국가유산청

월정사 왼쪽으로는 50리 을수골 계곡이다. 을수골에는 민가가 없다. 대신에 다섯 봉우리 평평한 장소(臺)에 암자가 있어 오대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것 같다. 오대(五臺)는 동‧서‧남‧북‧중(中)대이다. 만월봉 동대에 관음암, 장령봉 서대에 수정암, 기린봉 남대에 지장암, 상왕봉 북대에 미륵암, 지로봉 중대에 사자암이 있다. 이러니 오대산은 사찰 단지인 셈이다. 이곳 오대산 절들은 중국 불교 성지 산서성(山西省) 오대산 가람 배치를 본뜬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인공은 신라 자장율사(590∼658)이다. 자장스님이 중국 오대산에서 수행하면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귀국하여 이곳 오대산에 중국 오대산과 같은 불교 성지를 조성했다고 전한다. 필자는 오래전에 중국 오대산을 찾은 적이 있다. 돌이켜보니 그때 오른 곳이 오대 중 동대(東臺) 망해사(望海寺)였다. 중국 오대산을 불교 성지로 조성한 주체는 유목민족 탁발선비(拓跋鮮卑)의 나라 북위(北魏 386∼534)였다. 북위는 중원을 통일하여 오호십육국 시대의 혼란을 끝냈고, 같은 선비족으로 수(隋 581∼618) 나라를 개국한 문제는 개국 직후 오대산 다섯 봉우리에 사찰을 지어 호국도량으로 삼아 오대산을 불교성지로 완성했다. 이곳 오대산은 바로 중국 오대산 복사판인 것 같다.

월정사에서 계곡 왼쪽으로 9km 정도 가면 상원사(上院寺)다. 도로가 나 있고 마을버스도 다닌다. 이 길이 선재길이라고 한다. 선재가 ‘진리를 찾아 떠나는 구도자’ 선재동자(善財童子)에서 유래한 말이니 스님들이 걸으면서도 진리를 찾으라고 이름 붙인 길일 것이다. 세월이 달라져 우리 일행은 걷지 않고 승용차로 상원사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주차장에 내리니 주변은 온통 울창한 전나무 숲이다. 주차장 옆 계곡에 카페가 있는데 이곳이 관대걸이라고 되어 있다. 세조가 목욕하면서 옷을 벗어 걸어놓았던 장소라고 한다. 세조의 행차를 그저 전설이라고 넘기기는 어려운 증거 중 하나일까? 오대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고, ‘문수(文殊)신앙의 성지’라고 돌에 새겨놓았다.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신앙하는 성스러운 곳이라는 뜻은 알겠는데, 도대체 문수신앙의 정체가 무엇일까? 문수신앙의 정체를 모른 채 상원사를 둘러보아야 산중에 자리한 여느 큰 절을 관람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석가모니는 ‘샤카족의 성자’라는 뜻이다. 샤카족이 초원민족 스키타이 일파라고 하니 석가모니는 초원 유목민족에 속했을 것이다. 석가모니가 오랜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서기전 6세기에 불교가 시작되었다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그래서 초기 불교는 개인의 깨달음, 즉 자신을 위한다는 자리행(自利行)이 중심인 소승불교였다. 유목민족 대월지족이 흉노와 오손에 밀려 북인도로 이동하여 건국한 쿠샨왕조(귀상국, 貴霜國 30∼375)에서 불교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고 자비로 만민을 구제한다’는 이타행(利他行)을 중시하는 대승불교로 진화함으로써 일반 대중도 쉽게 불교에 다가갈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대중은 자신이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인도하는 보살을 선호함으로써 소위 불보살신앙이 확산되었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보살인데, 지혜는 바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므로 문수보살이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핵심 신앙이 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우주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스승을 불교에서는 문수보살로 형상화했다고 볼 수 있다. 문수보살은 부처를 포함한 모든 불자의 스승으로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 불교 진화 과정을 우리 전통 선도사상 사유체계에 도입하면 필자가 보기에 소승불교는 성통(性通)에, 대승불교는 공완(功完)에 방점이 찍힌 종교로 이해된다. 그러나 성통과 공완은 이어진 하나의 길이지만 소승과 대승은 별개의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 오대산은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귀국하여 창건한 도량이 배치되어 있어 문수신앙 성지가 된 것이다.

주차장에서 울창한 전나무 숲 비탈길을 200걸음 쯤 올라가면 상원사다. 이곳 상원사와 관련하여 전설이 된 두 이야기가 전한다. 하나는 조선 세조(1417∼1468)가 종기 치료차 이곳에 행차하여 목욕하다 등을 밀어준 동자승에게 ‘임금의 등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이르자 ‘임금님은 문수보살을 만났다고 말하지 마소서’라고 동자승이 답했다는 전설이다. 다른 하나는 6.25시기 인민군이 상원사를 점거하여 사용할 것을 우려한 국군이 상원사를 불태우려 하자 주지 한암스님이 ‘군인은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으니 불을 놓으라. 나는 불제자이니 몸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하겠다’면서 법당에 좌정하여 버텨 법당에 불을 지르지 못하고 문짝만 떼어 태웠다는 이야기다. 상원사는 비교적 소박한 절이다. 특이하게 본전 문수전이 ㄱ자로 지어져 있다. 정면에는 문수전 현판이 있고 꺾어진 전각 정면에는 상원사 현판이 있다. 이런 구조는 우리나라 절중에 유일할 것이다. 문수전에는 부처 대신 목조문수동자좌상을 모셔 놓았다. 1466년(세조 12년)에 만든 좌상이라고 되어 있다. 세조가 실제 이곳에 온 기록은 없다. 그러나 왕실에서 세조의 쾌유를 발원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문수동자좌상 복장물로 피묻은 적삼이 발견되어 월정사 아래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사찰 중수에 세조 일족이 기부한 재물을 기록한 문서 <상원사중창권선문>이 전한다. 문수동자좌상은 국보다. 화려하게 만든 좌상이다. 까만 머리카락이 특이하다. 많은 관람객이 좌상 모습에 칭찬하는 글을 남겼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좌상 얼굴이 동자라기보다는 어른에 가깝다.

사진 12.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출처 국가유산청
사진 12.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출처 국가유산청

상원사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중대(中臺) 사자암이고, 30분 정도 더 걸으면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한다. 사자암까지는 숲속 평탄한 흙길이고, 적멸보궁 가는 길은 오르막 돌계단이라고 아내가 말해준 적이 있다.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고 다녔으니 사자암은 문수보살을 모신 암자일 것이다. 적멸보궁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다. 우리나라에는 여섯 곳에 적멸보궁이 있다. 오대산 외에 통도사 금강계단,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 금강산 건봉사이다. 통도사를 제외하면 모두 강원도에 있는 절에 적멸보궁이 있는데 무슨 이유가 있는지 우연인지 알 수는 없다. 적멸보궁이 있는 절에는 대웅전이 없다.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 상을 모신 전각인데 부처님 진신 사리는 부처님 그 자체이므로 부처님 상을 따로 모실 필요가 없어서다. 어느덧 점심때가 지났다. 예상했던 대로 시간 제약으로 사자암과 적멸보궁 답사는 다음 기회로 기약하고 월정사 초입 식당가로 내려왔다. 고추장을 두르지 않은 산채비빔밥이 좋았다. 제삿밥을 제외하고 고추장이 빠진 비빔밥을 먹은 기억이 아득하다.

식당가에서 월정사 전나무길 입구까지 도로 오른 쪽에 실록박물관 성보박물관 한강발원지박물관 등이 줄지어 있고, 그 앞에는 연못과 멋진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더운 날씨에 월정사 상원사를 돌아보면서 모두들 조금은 지쳤고, 점심 후여서 나른하기도 해 정자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그런데 곧장 한국유라시아연구원 회원들이 준비한 답사자료집 『강릉 일대 화랑도 문화와 오대산 문수신앙』 발표회를 갖자고 한다. 발표회는 무려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정성껏 준비한 자료에 대해 질문도 많았고, 보충 설명하는 정경희 교수 노고가 컸다. 조금만 보완하면 학술논문이 될 수 있는 자료도 몇 편 있었다. 발표회가 끝나고 연못 건너 월정사 성보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사진 13  팔각9층석탑 상륜부. 제공 허성관
사진 13 팔각9층석탑 상륜부. 제공 허성관

성보박물관은 월정사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지만 일개 사찰 박물관 수준을 넘는 박물관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유물이 월정사 팔각9층석탑 상륜부<사진 13>를 복원한 실물이다. 안내문에는 장식 하나하나의 명칭이 적혀있으나 생소한 한자말이어서 가늠이 안 된다. 매우 화려하고 장인이 엄청난 공력을 쏟은 공예품이다. 공력에 불심이 더해진 작품이다. <사진 14>는 사명대사 친필 유묵 <불심종조달마원각대사>다. ‘불심의 으뜸은 달마원각대사’라는 뜻이다.

사진 14 사명대사 친필 유묵. 사진 허성관
사진 14 사명대사 친필 유묵. 사진 허성관

사명대사는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켰고, 임란 후 일본에 건너가 포로 송환 등 외교에 공을 세운 분이다. 이 유묵은 일본 체류 시에 일본인 승려 요청으로 써준 것이라는데 어떤 연유로 월정사가 소장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글씨는 매우 우아해서 본받고 싶은 필체다. 오래전에 필자 처가와 인연이 있었던 통도사 주지스님께서 써주신 유묵도 이 글씨를 닮았다. 어쩌면 모든 스님들이 닮고 싶은 글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보박물관 옆 실록박물관은 일제가 강탈한 오대산사고 조선왕조실록을 반환받아 전시한 곳이다. 그러나 강탈해간 실록이 이차세계대전 시 동경 폭격에 불타고 남은 일부를 반환받았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모사한 실록 몇 권을 볼 수 있었다. 10여 년 전 무주 적상산 사고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은 습도와 온도가 자연 조절될 정도로 잘 설계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강발원지박물관은 이곳 을수골이 한강 발원지임을 보여주는 곳인 듯 하나 들어가지 않았다. 황지가 한강 발원지로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되었지만 을수골을 발원지로 보는 기록도 있는가 보다.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어 월정사 왼쪽 산기슭 지장암으로 향했다. 지장보살을 모신 암자라 지옥에서라도 구제받자는 중생들로 붐빌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인적이 우리밖에 없다. 이곳이 5대 중 남대(南臺)다. 전각이 제법 크지만 전체적으로 차분한 가람 배치다. 필자는 일행들 귀가에 안전을 기원하고, 가족들 평안을 비는 마음으로 불전함에 조금 시주했다. 늦은 오후지만 초여름 햇볕은 여전히 따갑다. 일행이 함께 답사 증명사진을 찍고 오대산 자락을 헤맨 하루를 마감했다. 서울행 KTX이음을 타려 진부역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생각해보니 온종일 불교에 대해 보고 듣고 물으며 오대산 자락을 헤맸으나 역시 불교는 알듯 말듯하다. 아마도 온 세상에 부처가 가득하다는 화엄사상으로 불교가 진화하면서 모든 부처의 스승으로서 문수보살의 위상이 높아진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기도 하다. 창교 이후 불교가 쿠샨왕조를 거쳐 우전국(于闐國, 지금 신강 위글 자차구 和田지역)에서 진화하여 중국으로 전해졌다. 당시 불교가 융성했던 중국 왕조는 초원 민족 선비족(鮮卑族)의 나라 북위, 수, 당(唐 618∼907)이였다. 이들 나라에서 불교는 왕이 미래에 올 구세주 미륵불의 세상을 준비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 왕이 미륵불이라는 왕즉미륵불(王卽彌勒佛), 왕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王卽佛) 사상으로 변신하여 왕권 강화 수단이 되었다. 중국 불교가 신라에 19대 눌지왕(재위 417∼458) 때 전래되고, 100여년이 지나 23대 법흥왕(재위 514∼540) 때 공인되었다. 김씨 왕실이 중국 왕조처럼 불교를 왕권 강화 수단으로 활용하자 귀족들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동시에 전통 사상 선도를 실천해온 선가(仙家)는 소외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당시 3국이 쟁패하던 상황에서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사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선가들이 주체적으로 나서 외래 종교 불교와 전통사상 선도를 융합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이 결과 선도에서 하늘에 제사지내는 소도(蘇塗) 터에 절이 들어섰다. 선도 주신(主神) 환인(桓因)을 도와 세상을 다스리는 가장 윗자리에 위치한 신하 환웅(桓雄)이 곧 문수라는 믿음으로 발전했다는 기록도 선‧불 융합 실체를 반영한 것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 하루 헤맨 문수신앙의 성지 오대산을 바로 선‧불 융합 현장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출처 : https://www.ikoreanspirit.com/news/articleView.html?idxno=86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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