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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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행스님 작성일19-04-28 20:23 조회3,249회 댓글0건본문
기해년 오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며칠 있으면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전국에서 봉축 법회가 열려 우리나라와 세계 곳곳에 부처님 자비가 함께 하길 기원할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부처님 자비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이타심을 먼저 내는 게 서로 다 함께 사는 상생으로 가는 길입니다.
백 년 전을 기억하고 기록하면서 동시에 향후 백 년을 설계해야 합니다. 한반도 오천년 역사 끝에 우리는 물질적으로 발달하고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더 각박해지고 말았습니다. 70년대에 ‘물질만능 시대’라는 말이 처음 나왔는데, 지금은 물질이 신(神)을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해괴망측한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모든 것이 몸과 마음을, 물질과 정신을 하나가 아닌, 서로 다른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옛날 오대산 조실 탄허(呑虛) 스님은 ‘각유신(覺有神)’이라는 글귀를 써주면서, 인간은 정신과 마음을 각성하여 수행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각유신’은 정신을 깨닫고 각성해야 한다는 뜻이며, 깨닫고 각성한다는 것은 정신과 마음이 있기 때문이며, 정신과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근본으로 하여 도인과 성인이 존재하는 것이며, 도인과 성인이 선각자가 되어 그 시대를 이끌어 세계를 무지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장자(莊子)〉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전에 황제(黃帝)라는 임금이 적수(赤水) 가에서 놀다가 홀연히 현주(玄珠)를 잃어버렸습니다. (‘황재’는 마음에 비유하고, ‘적수’는 망상(罔象)에 비유하고, ‘현주’는 마음의 본체, 즉 불교로는 법신(法身)자리, 기독교로는 성부(聖父) 자리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知)’라는 신하를 시켜 찾게 했으나 못 찾았고, ‘이루(離婁)’라는 신하를 시켜서 찾게 했으나 그 역시 못 찾았고, 다시 ‘설구(說詬)’를 시켜 찾게 했는데 결국 못 찾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혜도 총명도 없는 ‘망상(妄想)’을 시켜 찾게 하니 순식간에 찾았습니다.(지(知)는 지식(知識)에 비유하고, 이루(離婁)는 십리(十里) 밖에 있는 가을 터럭 끝을 볼 수 있는 눈 밝은 사람으로 총명(聰明)에 비유하고, 설구(說詬)는 말 잘하는 것에 비유하고, 망상(罔象)은 모양이 없는 것, 즉 시·공간이 끊어진 것에 비유했습니다.)
이에 황제가 감탄해서 말하기를 “이상하다, 망상(罔象)이여. 네가 이에 현주(玄珠)를 얻었구나.”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세지변총(世智辨聰:지나치게 높은 세간의 지혜)으로써는 도(道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육안으로 보니 허공이 보이는 것이지, 도통한 성인들은 허공이 안보이고 대신 마음 광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나신 후 3천 년이 지난 지금 같은 말세에도 내 마음이 부처 마음이요, 부처님 마음이 내 마음이라고 꼭 믿고 마음에 허망하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면 이런 이가 바로 보살도를 행하는 이라고 한 것입니다.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은 허공을 바로 보고, 변하지 않는 마음의 광명을 보는 보살도를 행하는 국민이 많이 나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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