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묘향(吐妙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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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6-18 18:18 조회1,862회 댓글0건본문
면상무진공양구(面上無盡供養具) 구리무진토묘향(口裡無盡吐妙香)
심리무진시진실(心裡無盡是眞實) 무염무구시진상(無染無垢是眞常)
중국 당나라 때 선승인 무착(無着) 선사의 선시(禪詩)다.
뜻을 풀면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입으로 하는 좋은 말이 미묘한 향이로다. 마음속 끝이 없는 진실함, 때 묻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은 부처님 마음일세.”이다.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성내지 않고 웃음을 주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요, 온화한 말을 해주는 것 역시 미묘하고 향기 나는 선물이다. 마음에 때가 묻지 않고 진실하면 그를 일러 부처라 부를 수 있다.
늘 화내지 않고 좋은 말을 한다는 것, 사실 이것만큼 어려운 건 없다. 산중에 터를 잡고 팔십 일생을 살아온 소승 역시 마찬가지다. 시도 때도 없이 화가 치솟고 그 탓에 자신도 모르게 거친 말, 짜증 섞인 말, 남을 해코지하는 말, 아무 의미 없는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부처의 길은 거창한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최소한 화내지 않고 아름다운 말만 해도 충분히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 우리 사회는 부처의 길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온 사방팔방에 분노한 얼굴과 분노의 말이 횡행한다. 특별히 찾아볼 것도 없다. 소셜미디어만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분노에 들끓는 사회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남녀는 남녀대로, 있는 자와 없는 자는 또 그들대로 성난 얼굴로 극한의 험담을 늘어놓고 있다. 끔찍할 정도다.
이 분노의 얼굴과 말이 최대치로 나타나는 시기가 선거 기간이다. 선거라는 게 승패가 있고 여기서 승리자가 되기 위해선 온갖 수를 다 동원해야 하는 법이라지만 우리는 그 도가 너무 지나치다. 우리는 불과 몇 달 사이에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연이어 치르면서 이 광경을 목격했다. 아니, 목격한 게 아니라 대부분 어느 한 편에 서서 분노의 얼굴과 말을 쏟아냈다. 선거가 다 끝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선거 기간 중 우리가 토해놓은 조롱과 비난, 분노와 분열, 냉소와 혐오의 말이 홍수에 떠밀려 내려온 부유물처럼 아직도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이제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분노를 거두고 향기로운 말을 주고받는 것이다. 인사치레로 하는 덕담이 아니라 진정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우리가 다 함께 상생하는 아름다운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앞에 놓인 세계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전문가에 따르면 수년 내 기후위기가 본격화하면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온갖 끔찍한 재난이 닥칠 것이라고 한다. 2년여간의 코로나 사태 와중에 경제적 불평등은 더 심화했고 올겨울 또 다른 전염병이 올지도 모른다는 경고도 있다. 돈을 더 버느냐 못 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말이다.
희망의 얼굴과 말이 절실한 이유다. 먼저 정치권과 종교계가 나서야 한다. 정치적 이해득실이 아닌, 진정 국민의 앞날을 위해서 삼사일언(三思一言)하고 종교계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신적(神的) 호의를 얻어내기보다 우주에 대한 깊은 공감, 정의와 자비에 대한 헌신을 앞세워야 한다. 이것이 인류가 놓치지 말아야 할 도덕성의 핵심이다.
길고 길었던 코로나가 어느덧 출구 앞에 서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거의 다 해제됐고 전에 누렸던 일상의 활달함도 되찾았다. 하지만 소승은 여전히 마음이 어둡다. 지금 우리의 분노의 얼굴과 말이 코로나보다 더 심각한 전염병인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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