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에게 난세의 길을 묻다.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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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13-09-05 16:48 조회4,031회 댓글0건본문
제3강 목숨보다 소중한 가치
1. 두 가지를 다 이룰 수 없다면....
맹자가 말하였다.
“생선도 내가 원하는 바이고,
웅장(熊掌)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생선은 버리고 웅장을 선택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이고, 의(義)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義)를 택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원하는 바가 삶보다 더 한 것이 있다.
그러므로 삶을 구차히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며,
죽음은 내가 싫어하는 바이지만,
싫어하는 바가 죽음보다 더 한 것이 있다.
그러므로 환난(患難)을 피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가령 사람들이 원하는 바가 삶보다 더 한 것이 없다면
삶을 얻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어찌 사용하지 않겠으며,
가령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가 죽음보다 더 한 것이 없다면
환난을 피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어찌 사용하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살 수 있는데도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화(禍)를 피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므로 원하는 바가 삶보다 더 한 것이 있으며,
싫어하는 바가 죽음보다 더 한 것이 있으니,
현자(賢者)만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지마는,
현자는 능히 이것을 잃지 않을 뿐이다.
한 그릇의 밥과 한 그릇의 국을 얻어먹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더라도, 혀를 차고 꾸짖어 주면
길 가는 사람도 받지 않으며,
발로 밟고 주면 걸인(乞人)도 좋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만종(萬鍾)의 논(祿)은
예의(禮義)를 분별하지 않고 받으니,
만종의 녹이 나에게 무슨 보탬이 있어서이겠는가.
좋은 집과 받들어 모셔주는 처첩(妻妾)과
나를 알고 있는 궁핍한 자에게 선심을 베풀어
나를 고맙게 여김을 위해서일 것이다.
앞서 말한 경우처럼,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좋은 집을 위해서는 그 짓을 하며,
앞서의 경우처럼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자신을 알고 있는 궁핍한 자가
자신을 고맙게 여김을 위하여서는 그 짓을 하니,
이 또한 그만둘 수가 없는가.
이것을 일러 ‘그 본심(本心)을 잃었다.’고 하는 것이다.”
2. 개를 잃으면 찾으면서....
맹자가 말하였다.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義)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을 모르니,
애처롭다.
사람이 닭과 개가 도망가면 찾을 줄을 알면서도
마음을 잃고서는 찾을 줄을 모르니,
학문(學問)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그 놓친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지금 무명지(無名指)가 굽혀져 펴지지 않는 것이,
아프거나 일에 방해가 되지 않지마는,
만일 이것을 펴주는 자가 있다고 하면
진나라 초나라의 길을 멀다 여기지 않고 찾아가니,
이것은 손가락이 남들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남들과 같지 않으면
이것을 싫어할 줄 알면서도 마음이 남들과 같지 않으면
이것을 싫어할 줄 모르니,
이것을 일러 중요한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아름드리의 오동(梧桐)나무와 재(梓)나무를
사람들이 만일 살리고자 한다면
모두 이것을 기르는 방법을 알면서도,
자신의 몸에 있어서는 몸을 가꾸는 방법을 모르니,
어찌 몸을 아끼는 마음이
오동(梧桐)나무나 재(梓)나무 아낌만 못해서이겠는가.
너무나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이 자기 몸에 대해서 모두를 아끼니,
모두를 아끼면 모두를 가꾼다.
한 자와 한 치의 살을 아끼지 않음이 없다면,
한 자와 한 치의 살을 가꾸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잘 기르고 잘못 기름을 따지는 것이 어찌 다른 것이 있겠는가. 자기에게서 찾을 뿐이다.
몸에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있으며 작고 큰 것이 있으니,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해쳐서는 안 되며,
덜 중요한 것 때문에 중요한 것을 해치지 말아야 하니,
작은 것을 기르는 자는 소인(小人)이 되고,
큰 것을 기르는 자는 대인(大人)이 되는 것이다.
지금 정원사(場師)가 오동(梧桐)나무와 가 나무를 버리고
가시나무를 기른다면 형편없는 정원사이다.
손가락 하나만을 가꾸고,
더 중요한 몸통을 잃으면서도 모른다면,
이는 형편없는 사람이다.
음식을 밝히는 사람을 사람들이 천히 여기니,
작은 것을 기르고 큰 것을 잃기 때문이다.
음식을 밝히는 사람이 잘못함이 없다면
구복(口腹)이 어찌 다만 한 자나 한 치의 살이 될 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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