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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에게 난세의 길을 묻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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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13-08-26 16:20 조회4,0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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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새로운 시대가치가 필요하다.

一. 맹자는 누구인가?

8. 공자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뒤에
음악을 바르게 정리하여
아와 송이 각자의 위치를 찾게 하였으며,
시를 정리하고 서를 교정하고 주역에 해석을 덧붙이고
춘추를 지었는데,
맹자는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하던 벼슬에서 물러나
요순의 도를 기술하여 책을 지었으니,
이는 큰 현자가 성인을 본받아 지은 것이다.

공자의 70제자들이 공자의 평소 말씀을 모아
논어를 만들었는데
이 논어는 五經 중에서도 수레 굴대의 걸쇠와 같고,
六藝 중에서 옷깃과도 같은 존재이니,
맹자의 책이 이를 법 받은 것이다.

9. 위령공이 공자에게 陳法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예를 대신 말해주었고,
양혜왕이 나라를 이롭게 할 방책을 묻자
맹자는 인의로서 응대하였고,
송나라 향퇴가 공자를 해치려하자
공자는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시었다.” 하셨는데,
노나라 장창이 맹자를 헐뜯고 왕과 만나는 것을 방해하자
맹자는
“장씨의 자식이 어찌 내가 왕을 만나지 못하게 하였겠는가.” 하였으니 그 듯이 이렇게 맞았다.

이러한 것이 한 둘이 아니다.
또 外書 4편이 있는데, 性善 辯文 說孝經 爲正 이다.
그 글들이 그다지 크고 깊지 못하여
內篇과는 비슷하지 않으니,
아마도 맹자의 본래 진짜 글이 아니라
후세에 모방해서 지어 붙인 것인 듯하다.

10. 맹자가 세상을 뜬 후에 大道는 마침내 버림받았다.
지금은 망해버린 秦나라에 이르러
儒家의 경전을 불태워 없애고 유생들을 땅에 묻으니
맹자를 추종하던 이들은 모두 없어졌다.

그러나 그 책은 諸子라는 이름으로 불렸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았다.

漢나라가 일어나 진나라 때의 잔학한 금령들이 제거되고
도덕의 세상이 열렸다.

효문 황제(BC179-157)가
지방 유생들의 遊學의 길을 넓히고자하여
論語, 孟子, 爾雅에 대하여 모두 博士 관직을 설치하였는데, 그 뒤에 傳記博士는 폐지되고
오경에만 박사제도를 두었을 뿐이지만,
지금까지도 모든 경의 뜻을 해석함에
맹자의 말을 인용하여 사리를 밝히고 있으니,
문헌에 밝았다 할 것이다.

11. 맹자는 비유에 뛰어났다.
말은 박절하지 않았지만 의미만은 확실하였다.

그의 말에, “시를 해석하는 자는 한 글자로 전체의 뜻을 그르쳐서는 안 되고, 한 마디 말로 전체의 뜻을 그르쳐서도 안 된다. 해석하는 자의 생각으로 지은 이의 뜻을 만나야 제대로 해석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 있는데,
이 말은 후인들로 하여금 그 뜻을 탐구하여
그 글을 해석하게 하고자 한 것이니
시를 해석하는 데만 국한 되지 않는다.

지금 해석하는 자들이 종종 일부분만 가지고 해석하니,
그 해석이 또 대부분 다르다.

맹자 이후 5백여 년에 맹자를 전하는 자도 많아졌다.

12. 나는 西京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족보를 거슬러 찾아보면 내력이 있는 집안이다.

어려서 바른 교육을 받았고 많은 문헌을 섭렵하였다.

50세 때에 하늘에 사무치는 슬픈 화를 당하여
말할 수 없는 괴로움에 걸려 성을 속이고 숨어
천지 사방으로 10여 년 간 떠돌이 생활을 하였다.

마음이 찢어지고 피곤한 몸이 어떠한 일인들 이만 하겠는가.

13. 일찍이 濟水와 泰山 사이에서
어깨를 쉬려 짐을 내려놓고 있을 적에
마침 溫故知新하는 덕 있는 군자가 있어
나의 힘들고 초췌한 모습을 불쌍히 여기고
나의 백발을 가엽게 보아
날 찾아와 옛 역사를 논하고 大道로 위로해 주었다.

곤궁한 속의 나는 정신이 흩어져 집중할 수가 없었지만
애오라지 서적에 뜻을 두어
생각을 가다듬고 늙음을 보내고자 하였다.

六經의 학문만은 先覺의 선비들이
자세하게 해석해 놓은 것이 많은데,
유가의 서책 중에 맹자만이 웅장하고 미묘하여
깊은 뜻을 알기가 어려우니 조리 있게 해석해야 할 책이다.

14. 이에 배웠던 뜻을 기술하고 다른 經傳들로서 증거하여
章句를 만들어 본문에 갖추어 싣고,
장마다 그 뜻을 분명히 구별하고,
상하 편으로 나누니 모두 14권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잘 아는 사람에게는
감히 해당하는 바가 아니고
새로이 배우는 사람에게는
의심나는 부분을 깨우치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도 옳고 그름을 확신할 수 없으니
후세의 눈 밝은 이가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거든
바르게 고쳐준다면 그 역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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