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에게 난세의 길을 묻다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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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13-10-17 17:03 조회4,528회 댓글0건본문
제5강. 이상적인 통치는 무엇인가?
1. 기본복지가 인정(仁政)의 시작이다.
양혜왕이 말하였다. “우리 진(晉)나라가 천하에 막강함은 선생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그러나 과인의 대에 이르러 동쪽으로 제나라에게 패전하여 장자(長子)가 전사하였고, 서쪽으로는 진(秦)나라에게 땅을 7백리를 잃었고, 남쪽으로는 초(楚)나라에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과인이 이것을 부끄럽게 여겨 전사한 자를 위해서 한번 설욕하기를 원하오니,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땅이 사방 백리만 되어도 왕 할 수 있습니다. 왕께서 만일 인정(仁政)을 백성에게 베푸시어, 형벌을 신중히 하시며, 세금을 적게 거둔다면, 백성들은 깊이 밭 갈고 잘 김매고, 장성한 자들은 여가를 이용하여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을 익혀서, 들어가서는 부형(父兄)을 섬기며 나가서는 윗사람을 섬길 것이니, 이들로 하여금 몽둥이를 만들어 진(秦)나라와 초나라의 견고한 갑옷과 예리한 병기를 공격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들이 백성들의 농사철을 빼앗아, 백성들로 하여금 밭 갈고 김매어 그 부모를 봉양할 수 없게 하면, 부모가 얼고 굶주리며 형제 처자가 헤어져 흩어지게 될 것이니, 저들이 그 백성을 함정에 빠뜨리고 도탄에 빠뜨리거든 왕께서 가서 바로잡으신다면 누가 왕과 대적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인자(仁者)는 대적할 사람이 없다.’ 한 것이니, 왕은 의심하지 마소서.”
“지금 왕께서 어진 정지를 펴시어 천하에 벼슬하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조정에서 벼슬하고자 하게하며, 경작하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왕에 들에서 경작하게 하며, 장사꾼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시장에 물건을 저장하고자 하게하며, 여행하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길에 나아가고 싶게 한다면, 천하에 자신의 군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모도 왕에게 달려와 하소연하려 할 것이니, 이러하면 누가 이를 막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나는 사리에 어두워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 선생께서는 나의 뜻을 도와서 밝게 가르쳐 주소서. 내 비록 영민하지는 못하오나 시험해 보겠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서도 일정한 마음을 가진 자는 학문을 한 선비만이 가능한 것이고, 일반 백성으로 말하면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그로 인하여 일정한 마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일정한 마음이 없어진다면 방탕함과 사악한 짓을 하게 될 것이니, 그리하여 죄를 지은 뒤에 그들을 형벌한다면, 그것은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 이가 통치자로 있으면서 백성을 그물질하는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백성의 생업을 제정해 주되, 반드시 위로는 부모를 충분히 섬길 수 있도록 해주며, 아래로는 아내와 자식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게 해주어, 풍년에는 1년 내내 배부르고, 흉년이 들어도 죽음을 면하게 하는 것이니, 그런 뒤에야 백성들을 이끌어 착하게 살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명령을 잘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은 백성의 생업을 제정해 주면서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 부족하며, 아래로는 아내와 자식을 부양할 수 없게 하여, 풍년에도 1년 내내 고생하고, 흉년이 들면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이것은 오직 죽음에서 살아나기에도 부족할까 두려운데, 어느 겨를에 예의를 배우고 실행하겠습니까?”
2. 소외된 백성을 먼저 챙기고...
제선왕이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나더러 명당(明堂)을 헐라 하는데, 헐어야 합니까? 그냥 두어야 합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명당은 왕자의 집입니다. 왕께서 황정을 행하고자하면 헐지 마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왕정(王政)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맹자가 대답하였다. “옛적에 문왕(文王)이 기주(岐周)를 다스릴 적에 경작하는 자들에게 9분의 1의 세금을 받았으며, 벼슬하는 자들에게는 대대로 녹(祿)을 주었으며, 관문(關門)과 시장(市場)을 살피기만 하고 세금을 징수하지 않았으며, 못이나 저수지에서 고기 잡는 것을 금하지 않으며, 죄인을 처벌하되 처자(妻子)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였습니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것을 홀아비(鰥)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것을 과부(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이 없는 것을 외로운 이(獨)라 하고, 어려서 부모가 없는 것을 고아(孤)라 하니, 이 네 가지는 천하의 곤궁한 백성으로서 하소연할 곳이 없는 자들입니다. 문왕은 어진 정사(政事)를 시행 하시면서 반드시 이 네 종류의 사람들을 먼저 보살폈습니다. 《시경(詩經)》에, ‘부자(富者)들은 그래도 괜찮지만 이 곤궁한 이가 가엾다.’ 하였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선생님 말씀이여!”
맹자가 말하였다. “왕께서 만일 좋게 여기신다면 시행하시지요.”
왕이 말하였다. “과인은 병통이 있으니, 과인의 재물을 좋아합니다.”
맹자가 대답하였다. “옛적에 공유(公劉)가 재물을 좋아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노적이 쌓이고 창고가 가득한데, 마른 양식은 전대에다 싸고 자루에다 넣고서, 백성을 편안히 하여 이로써 국가를 빛낼 것을 생각하여, 활과 화살을 준비하며 창과 방패와 도끼를 가지고 비로소 길을 떠났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집에 남아 있는 자들은 노적과 창고가 있으며, 길을 떠나는 자들은 가지고 갈 양식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왕께서 만일 재물을 좋아하시거든 백성과 함께 하신다면 왕 하심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왕이 말하였다. “과인은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여자를 좋아합니다.”
맹자가 대답하였다. “옛적에 태왕(太王)이 여자를 좋아하시어 그 후비(后妃)를 사랑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아침에 말을 달려와서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기산) 아래에 이르러 강씨 여인(姜女)과 같이 와서 집터를 보았다.’ 하였으니, 그 당시에 집안에는 원망하는 여자는 없고 밖에는 홀아비가 없었으니, 왕께서 만일 여인을 좋아하시거든 백성과 함께 하신다면 왕 하심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장포(莊暴)가 맹자를 뵙고 말하였다. “포가 왕을 뵈오니, 왕께서 저에게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으나 저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하였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왕께서 음악을 매우 좋아하면 제(齊)나라는 다스려질 희망이 있다.”
그런 뒤 어느 날 맹자가 왕을 뵙고 말하였다. “왕께서 장자(莊子 장포)에게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하니 그러한 일이 있습니까?”
왕은 얼굴빛이 변하며 말하였다. “과인은 선왕(先王)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음악을 좋아할 뿐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왕께서 음악을 매우 좋아하시면 제나라는 다스려질 희망이 있습니다. 지금의 음악이 옛 음악과 같습니다.”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악을 혼자서 즐기는 것과 다른 사람과 같이 즐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
“남과 함께 하는 것만 못합니다.”
“적은 수의 사람과 음악을 즐기는 것과 많은 사람과 음악을 즐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
“많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만 못합니다.”
“신이 왕을 위하여 음악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왕이 이곳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하면 백성들의 왕의 종소리, 북소리와 피리소리, 젓대소리를 듣고는 모두 머리를 아파하고 이마를 찌푸리며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음악 연주를 좋아하심이여! 어찌 우리들로 하여금 이 곤궁함에 이르게 해서 부자간(父子間)이 서로 만나보지 못하며, 형제처자(兄弟妻子)가 헤어지게 하는가.’ 하며, 지금 왕이 사냥을 하시면 백성들은 왕의 수레소리, 말소리를 들으며 깃과 들소꼬리로 만든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고는 모두 머리를 아파하고 이마를 찌푸리며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사냥을 좋아하심이여! 어찌 우리들로 하여금 이 곤궁함에 이르게 해서 부자간(父子間)이 서로 만나보지 못하며 형제처자(兄弟妻子)가 서로 헤어지게 하는가.’ 한다면, 다름이 아니라 왕께서 백성과 함께 즐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대로 지금 왕이 이곳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하면 백성들이 왕의 종소리, 북소리와 피리소리, 젓대소리를 듣고는 모두 흔연히 기뻐하면서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아마도 질병이 없으신가보다. 어떻게 저렇게 음악을 연주하는가.’ 하며, 지금 사냥을 하시면 백성들이 왕의 수레소리, 말소리를 들으며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고는 모두 흔연히 기뻐하면서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이 아마도 질병이 없으신가보다 어떻게 저렇게 사냥을 하시는가.’ 한다면,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백성과 함께 즐기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백성과 함께 즐기신다면 왕 하실 것입니다.”
제선왕이 물었다. “문왕(文王)의 동산이 사방 70리라 하니, 그러한 일이 있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였다. “고전에 그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처럼 컸습니까?”
“백성들은 오히려 작다고 여겼습니다.”
“과인의 동산이 사방 40리지만, 백성들이 오히려 크다고 여김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였다. “ 문왕의 동산 사방 70리에 거기서 꼴 베고 나무하게 하였으며, 그곳에서 꿩 잡고 토끼를 잡도록 하여 백성과 함께 하였으니, 백성들이 작다고 여김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신이 처음 국경에 이르러 제나라에서 엄하게 금지하는 것을 물은 뒤에야 감히 들어왔습니다. 신이 그때 들으니, 교외 관문의 안에 동산이 사방 40리 인데, 동산에 있는 사슴을 죽이는 자를 살인의 죄로 다스린다 하였습니다. 이는 40리로 나라 한가운데 함정을 만든 것이니, 백성들이 크다고 여김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제선왕이 맹자를 설궁(雪宮)에서 뵈었는데, 왕이 말하였다. “현자(賢者)도 이러한 즐거움이 있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얻지 못하면 그 윗사람을 비난합니다. 그런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 하여 그 윗사람을 비난하는 자도 잘못이고, 백성의 윗사람이 되어서 백성과 함께 즐기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백성이 즐거워하는 것을 같이 즐거워하는 자는 백성들도 그 군주의 즐거워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백성들이 근심하는 것을 같이 근심하는 자는 백성들도 그 군주의 금심을 같이 근심합니다. 즐거워함을 온 천하와 같이하며, 근심하기를 온 천하와 같이 하고 그렇게 하고도 왕 하지 못하는 이는 없습니다.”
3. 덕으로 미래를 위한 것이 정치다.
맹자가 말하였다. “힘으로써 인(仁)의 행위를 빌린 자는 패자(覇者)이니 패자는 반드시 큰 나라를 소유하여야 하고, 덕(德)으로써 인(仁)을 행한 자는 왕자(王者)이니 왕자는 큰 나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탕왕(湯王)은 70리 땅을 가지고 하셨고, 문왕(문왕)은 백리 땅을 가지고 하셨다. 힘으로써 남을 복종시키는 자는 진심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해서이고, 덕으로써 남을 복종시키는 자는 마음속으로 기뻐하여 진실로 복종함이니, 70제자가 공자에게 심복함과 같은 것이다. 《시경(詩經)》에, ‘서쪽에서 동쪽에서 남쪽에서 북쪽에서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맹자가 말하였다. “인(仁)하면 영화롭고, 인(仁)하지 못하면 치욕(치욕)을 받나니, 지금 치욕을 싫어하면서도 불인(불인)한 일을 하는 것은, 이는 마치 젖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낮은 곳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만일 치욕을 싫어한다면 덕(德)을 귀히 여기고 선비를 높이는 것만 못하니, 현자(賢者)가 지위에 있으며, 재능이 있는 자가 직책에 있어서 국가가 한가하거든 이때에 그 정사와 형벌을 분명하게 한다면, 비록 강대국이라도 반드시 그를 두려워할 것이다. 《시경(詩經)》에,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을 때에 미리 뽕나무 뿌리를 주어다가 창문을 칭칭 감는다면 지금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누군들 감히 나를 업신여기겠는가.’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시를 지은 자는 도(道)를 안 사람이다. 능히 자기 국가를 다스린다면 누가 감히 업신여기겠는가.’ 하였다. 지금은 국가가 한가하면 이때를 즐기고 태만하며 오만한 짓을 하니, 이것은 스스로 화를 구하는 짓이다. 화와 복이 자기로부터 구하지 않는 것이 없다. 《시경(詩經)》에, ‘길이 천명(天命)에 합치되기를 생각함이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것이다.’ 하였으며 <태갑(太甲)>에 이르기를 ‘하늘이 만든 재앙은 그래도 피할 수 있으나, 자신이 지은 재앙은 살 길이 없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4. 큰 정치, 책임지는 정치
자산(子産)이 정나라의 정치를 담당할 적에, 자기의 수레로 진수(溱水)와 유수(洧水)에서 사람들을 건네주었다.
맹자가 말하였다.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를 모른 것이다. 11월에 판자로 작은 다리를 놓고, 12월에 큰 다리가 완성되면, 백성들이 물 건너는 것을 괴롭게 여기지 않는다. 위정자가 정사(政事)를 공정하게 한다면 출행할 때에 사람들을 물리는 것도 가능하다. 어찌 사람마다 모두 건네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위정자자 매양 사람마다 마음을 기쁘게 해주려 한다면 날마다 그 짓만 하여도 부족할 것이다.”
맹자가 말하였다. “편안하게 해주기 위하여 백성을 부리면 비록 수고로우나 백성들이 원망하지 않으며, 살려주기 위하여 백성을 죽이면 비록 죽더라도 죽이는 자를 원망하지 않는다.”
양혜왕이 말하였다. “과인은 나라에 대하여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河內)지방에 흉년이 들면 그 곳의 배성을 하동(河東)지방으로 이주 시키고, 그 곳의 곡식을 하내지방으로 옮겨주며, 하동지방에 흉년이 들면 역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웃나라의 정치를 살펴보면, 과인처럼 마음을 쓰는 자가 없는데도 이웃나라의 백성들이 더 적어지지 않고, 과인의 백성들이 더 많아지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왕께서 전투를 좋아하시니, 전투를 가지고 비유하겠습니다. 둥둥둥 북소리에 무기를 들고 접전을 하다가,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끌고 도망을 치는데, 어떤 자는 100보를 도망한 뒤에 멈추며 어떤 자는 50보를 도망한 뒤에 멈추며 어떤 자는 50보를 도망한 뒤에 멈추었는데, 50보를 도망친 자가 100보를 도망친 자를 비웃는다면 어떻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불가하니, 100보를 도망치지 않았을 뿐이지 그것도 도망친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왕께서 만일 그것을 아신다면 백성들이 이웃나라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농사철을 어기지 않게 하면 곡식을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도끼와 자귀를 때에 따라 산림에 들어가게 하면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을 것입니다. 곡식과 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으면, 이는 백성으로 하여금 살아있는 이를 봉양하고 죽은 이를 장례 치르는데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 왕도(王道)의 시작입니다. 5묘(畝)의 집 가장자리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세 된 자가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개와 돼지와 닭 등의 가축을 새끼 칠 때를 잃지 않게 하면 70세가 된 자가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백묘(白畝)의 토지에 농사철을 빼앗지 않는다면 몇 식구의 집안이 굶주림이 없을 것이며, 상서(상서)의 가르침을 삼가서 효제(孝悌)의 의리로써 거듭 가르치면, 머리가 반백(頒白)이 된 자가 도로에서 짐을 지거나 이지 않을 것입니다. 70세가 된 자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춥지 않게 하고서도 왕 하지 못하는 자는 없습니다.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되 단속할 줄 모르며,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어도 창고를 열 줄 모르고, 사람들이 굶어 죽으면 ‘내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흉년 때문이다.’하니, 이 어찌 사람을 찔러 죽이고서 ‘내가 그런 것이 아니고 병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죄를 흉년에 돌리지 않으시면 천하의 백성들이 위(魏)나라로 올 것입니다.
양혜왕이 말하였다. “과인이 마음을 가다듬고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맹자가 대답하였다. “사람을 죽임에 몽둥이와 칼을 사용하는 것이 차이가 있습니까.”
“차이가 없습니다.”
“칼과 정치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차이가 있습니까.”
“차이가 없습니다.”
“군주의 푸줏간에는 좋은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으면서,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먹게 한 것입니다. 짐승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도 사람들은 미워하는데, 백석의 부모가 되어 정치를 하면서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정치를 면치 못한다면 백성의 부모 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중니(仲尼)께서 말씀하시기를 ‘처음으로 용(俑)을 만든 자는 그 후손이 없을 것이다.’하셨으니, 이는 사람과 흡사한 모습을 만들어 장례에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굶주려 죽게 한단 말입니까.”
5. 주변에 바른 사람을 두어야.
노평공(魯平公)이 밖에 나가려 할 적에 폐인(嬖人) 장창(臧倉)이란 자가, “다른 때에는 군주께서 외출하시려면 반드시 유사(有司)에게 갈 곳을 명하시더니, 오늘은 수레에 멍예를 매었는데도 유사가 갈 곳을 모르니, 감히 청하옵니다.”하니, 공이 말하였다. “맹자를 만나려고 한다.” “어째서 입니까? 군주께서 몸을 가벼이 하여 필부(匹夫)에게 먼저 예를 행하는 까닭은 그가 어질다고 해서입니까? 예의는 현자(賢者)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맹자의 뒤에 치른 상례가 앞에 치른 상례보다 나았습니다. 군주께서는 그를 만나보지 마소서.” 평공이 말하였다. “그렇겠다.”
악정자(樂正子)가 들어가 평공을 뵙고 말하였다.
“군주께서는 어찌하여 맹가(孟軻)를 만나보지 않으셨습니까?”
“어떤 사람이 과인에게, ‘맹자의 뒤에 치른 상례가 앞에 치른 상례보다 나았다’하기에 가서 보지 않았다.”
“무엇 때문입니까? 군주께서 이른바 나았다는 것은 앞에는 사(士)의 예로써 하고 뒤에는 대부(大夫)의 예로 하고, 앞에는 삼정(三鼎)을 사용하고 뒤에는 오정(五鼎)을 사용한 것을 말씀하십니까?”
“아니다. 관곽(棺槨)과 의금(衣衾)의 아음다움을 말한 것이다.”
“아닙니다. 그것은 이른바 나았다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부유한 상황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악정자가 맹자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군주께 아뢰니, 와서 뵈려고 하더니, 폐인(嬖人) 장창이라는 자가 군주를 저지하였습니다. 군주께서 그 때문에 끝내 오지 않은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가는 것은 누군가 시켜서 가고, 멈추는 것은 누군가 막아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고 그치는 것은 남이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나라 군주를 만나지 못함은 운명이니, 장씨(臧氏)의 아들이 어찌 나로 하여금 만나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장차 크게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군주는 반드시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있었다. 그리하여 상의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찾아갔으니, 덕(德)을 존중하고 도(道)를 좋아함이 이러하지 않으면, 함께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탕왕(湯王)은 이윤(伊尹)에게 배운 뒤에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수고롭지 않고 왕노릇을 하였고, 환공(桓公)은 관중(管仲)에게 배운 뒤에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수고롭지 않고 패자가 된 것이다.”
“지금 천하에 영토의 크기가 서로 비슷하고 정치능력도 비슷해서 서로 뛰어나지 못함은 다름이 아니다. 자기가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신하로 삼기를 좋아하고 자기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신하로 삼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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