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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환수보고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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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14-02-20 11:52 조회4,2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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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회담과

도쿄대의 기증결정

5월 10일, 도쿄의 김순식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도쿄대가 5월 10일 '조선왕조실록'과 관련하여 긴급 이사회를 개최하고 있으니, 변화가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2일 도서관장이 직접 나와 5월 31일 3차회담을 열겠다고 통보, 그날 도쿄대측이 중대한 발표를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환수위도 긴급한 회의를 갖고 3차회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했다. 5월 31일은 지방 선거일이므로, 국회의원 모임의 3차회담 지원 및 참여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선거일로 도쿄대가 날짜를 잡은 것으로 미루어, 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작전임을 눈치채고 뭔가 심각한 결정을 통보할 것임을 직감했다.

< 도쿄대 정문 환수위 - 3차회담에 앞서 도쿄대 정문 아까몬 앞에 선 환수위(실록 반환결정 소식을 접하고 밝은 표정으로 촬영에 임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훈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회장, 혜문스님, 김순식 변호사, 문춘자 여사, 법상스님, 김원웅 의원, 문만기 실행위원장, 이춘희 변호사, 김용목 보좌관) >

자문위원장인 김원웅 의원도 뭔가 중대한 움직임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동의하고 일단 5월 31일 협상에 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조계종 중앙신도회도 중요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5월 31일 회담에 참가하기로 했다. 일본측의 조총련계신문<조선신보>과 일본의 아사히신문도 이날 벌어질 상황에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환수위는 5월 30일 오후 1시 다음날의 협상을 위해 김원웅 의원과 함께 출국했다. 일본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로 이동한 뒤, 우리는 서울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도쿄대가 실록 반환을 결정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쿄대측에 확인해본 결과 도쿄대가 발표한 것은 아니고, 서울대측에 의해 한국에서 먼저 발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 실록기증 결정 전달 - 도쿄대 도서관장이 환수위 간사 법상스님에게 실록을 서울대로 기증하기로 했다는 결정문을 전달하고 있다. >

우리는 김순식 변호사에게 좀더 구체적인 사실 확인을 부탁했는데, 잠시후 변호사는 '도쿄대가 실록 반환 결정을 내린 것은 사실이며, 원래 5월 31일 환수위와의 협상을 마치고 발표할 예정이었던 것을 서울대가 하루 전날 미리 발표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이날 저녁 도쿄에서 환수위측은 변호사들과 함께 서로에게 감사하며 시간을 함께 했다.

실록의 반환운동은 지난시기 빼앗겼던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한판 승부였고, 실록 환수는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일궈낸 민족의 승리였기 때문이다.

다음날 5월 31일 11시 30분에 열린 도쿄대와의 3차회담에서 도쿄대 도서관장은 '실록을 서울대로 기증하기로 결정했다'는 취지의 결정문을 환수위측에 전달한 뒤, 회담을 앞두고 언론에 미리 발표된 사실에 대해 환수위측에 거듭 사과를 했다.

< 도쿄대 인사와 기념촬영 - 3차회담후 도쿄대 인사와 기념촬영(가운데 여성이 통역 우시오 여사, 우측이 사사카와 부장) >

"3차회담을 약속해 놓고 언론에 미리 발표된 것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환수위와의 회담이 끝난 뒤, 서울대측과 1시에 공동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는데, 서울대측에서 언론에 미리 공개하는 바람에 대단히 복잡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서울대 기증' 사실을 문제삼지는 않았고, 다만 반환이 아닌 기증이란 단어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 도쿄대측의 부도덕성을 추궁했다.

도서관장은 본인들은 '기증'이란 단어를 쓰지만, 한국측에서 무슨 단어를 쓰는가는 관여하지 않겠다며, 기자회견 시간이 촉박하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 기자회견장 - 도쿄대 부총장이 실록의 서울대 기증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 >

도쿄대 인사들은 다소 밝은 표정으로 3차회담에 임했고, 회담이 끝나자 '그동안 고생했다'며 환수위측과 기념촬영을 제안했다. 우리는 촬영후 기자회견장에 참석, 도쿄대가 실록반환을 결정하는 현장을 지켜보았다.

< 아사히 신문 기사 - 환수위의 활동과 도쿄대의 반환 결정과정을 보도하고 있다. >

성명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의

반환결정을 환영한다

1.우리민족의 빛나는 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이 도쿄대학으로부터 우리민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는 지난해 도쿄대학이 실록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실록을 관리, 수호 했던 월정사를 중심으로 시민단체 및 국회의원 등과 함께 '환수위'를 구성 지난 3월 3일 정식 출범한바 있다. 그 뒤 대사관과 도쿄대에 반환요청서를 전달하고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 '재일본거류민단' 등과 연대했으며 두 차례에 걸친 반환협상을 추진 오늘의 쾌거를 이루었다. 이 모든 영광을 함께 연대한 남.북한 불교도, 국회의원모임, 일본동포등 민족 모두에게 돌리는 바이다.

2.환수위는 반환협상을 추진하면서 "강제징용에 끌려간 형제를 찾는 마음으로 위안부로 잡혀간 누이를 찾는 마음으로 협상에 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우리는 약탈당한 문화재를 당당하게 반환 받는 입장을 견지했고 그 외에 어떤 타협도 하지 않기로 했다. 환수위는 실록의 강탈상황, 도쿄대가 소장한 경위, 현재의 정확한 소장목록등을 모두 입증 했고, 5월 31일 3차협상을 마지막으로 소송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이에 당환한 도쿄대는 패배를 인정할 수 없기에 '서울대 기증' 이라는 방법을 택했다고 본다. 그것도 사실은 4월 17일 2차협상에서 "재산처분 규정이 없어서 실록을 돌려 줄 수 없다"는 도쿄대의 궁색한 주장에 대해, 환수위가 1932년 5월 경성제대로 27권을 돌려주었던 전례에 준하여 우리민족에게 돌려줄 것을 요구한 결과물로 판단하다.

3.이번 환수운동은 1965년 한일협정 당시 '문화재 청구권 소멸'과 '반환 아닌 인도 및 기증' 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핵심으로 진행되었다. 환수위의 활동 결과, 조선왕조실록이 '불법약탈문화재'라는 것이 입증되었기에, 이번은 1965년처럼 일본으로부터 기증받는 것이 아니라 반환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마지막 성과를 앞두고, 도쿄대가 제안하고 서울ㄷ가 실록을 기증형식으로 받기로 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것은 자기 물건을 남에게 기증받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도쿄대의 제안을 역사의식 없이 전격 수용함으로써 남북한 불교도, 일본 동포사회, 국민모두의 지지와 연대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승리'의 영광을 퇴색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금 일본에 의해 농락당하고 타협한 1965년도의 상황으로 우리역사를 후퇴시킨 것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4.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의 반환은 '국민적 경사' 이므로 당분간 환수위는 어떤 논쟁도 원치 않으며, 일정 기간까지 모두가 화합하여 실록의 반환을 '경축'할 엇을 제안하다. 다시 한 번 이 싸움에 연대와 지지를 보내준 남북한의 불교도, 재일동포 사회, 국회의원, 국내언론들에게 감사드리며, 특히 협상과 법류검토를 진행했던 일본 재일동포 김순식, 이춘희 변호사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06. 5. 31 도쿄대학에서

조선왕조실록 환수 위원회 제 3차 협상단 대표

김원웅 의원 (환수위 자문위원장)

법 상 (환수위 간사)

혜 문 (환수위 간사)

문만기 (환수위 실행위원장)

송영한 (환수위 실행위원)

김용목 (실록 되찾기 국회의원

모임 강혜숙 간사 보좌관)

이상훈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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