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山)의 인문학---옥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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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 관리자 작성일14-09-13 18:59 조회4,195회 댓글0건본문
산(山)의 인문학---옥녀봉
융프라우라는 익히 알려진 산이 있다.
스위스의 유명한 관광지인 이 산은 신이 빚은
알프스의 보석이라고 칭송받는다.
일찍이 2001년에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영예로운 산이기도 하다.
높이 4158m의 설산인 융프라우를 보노라면
산체가 거칠고 높아 숨이 멎을 듯 압도적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산의 모양새와는 달리 이름의 뜻은 ‘젊은 처녀’(독일어 Jung은 영어로 Young이고
frau는 woman이다)다. 처녀산이다.
통영 사량도의 옥녀봉 모습. 정상의 바위가 젖꼭지를 연상케 한다. 먼당 바위가 있고 옥녀가 뛰어내린
설화의 현장이다.
■ 전국에서 가장 흔한 산 이름 ‘옥녀봉’
한국에도 옥녀봉(玉女峰)이라는 산이 있다.
같은 처녀산이다. 옥녀는 말 그대로 옥처럼 마음과 몸이 정결한 여인이다.
나지막이 솟아있는 옥녀봉은 인근에 하나 정도 있는 흔한 산이다. 산림청 조사 통계(2007년)에 의하면, 전국의 가장 많은 산이름은 봉화산(47개), 국사봉(43개), 옥녀봉(39개), 매봉산(32개), 남산(31개)
순으로 옥녀봉이 3위다.
그런데 이것은 지도상에 표기되어 있는 이름만
집계한 것이라 실제는 누락된 것이 많다.
최근(2012년)의 논문에 의하면, 광주와 전라남도에만도 80여개의 옥녀봉이 나타난다고 한다.
아마도 전국의 옥녀봉을 집계하면 수백개는
될 것이다. 수적으로 가장 많고, 가장 일반적인
산 이름인 것이다.
융프라우 설산의 이미지는 젊은 처녀처럼 순결하고 자신을 열어 보이지 않는다. 산 밑의 날씨가 아무리 화창하더라도, 하늘장벽처럼 높이 솟은 융프라우는 구름 베일로 희디흰 알몸을 열었다 감췄다 하는
경우가 다반사란다.
스위스 사람들에게 “Jungfrau zeigt nicht seine nackt Korper”(융프라우는 알몸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옥녀봉은 어떤 모습일까?
순하고 어수룩하지만 질투도 있는 시골 처녀다.
봉긋한 산의 생김새도 옷깃을 여미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처녀의 모습과 닮았다.
엉뚱하지만 판소리 가루지기타령의 변강쇠와 옹녀도 옥녀다.
소리꾼은 옥녀의 매력으로 남심을 끌어당긴다.
이런 모습이다.
“평안도 월경촌에 계집 하나 있으되,
얼굴로 볼작시면, 춘 이월 반개도화(半開桃花)
옥빈(玉빈)에 어리었고, 초승에 지는 달빛 아미
간에 비치었다. 앵도순(櫻桃脣) 고운 입은 빛난 당채 주홍필로 떡 들입다 꾹 찍은 듯, 세류(細柳)같이
가는 허리 봄바람에 흐늘흐늘….”
융프라우와 옥녀봉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산이 의인화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의인화된 산이름은 숱하게 많다.
국사봉도 그렇고 장군봉도 그렇다.
인간화된 산이요, 사람의 산이 된 것이다.
옥녀봉 유래의 하나로,
“산 건너편에 왕자봉이 있는데
여자산이 있어야겠다”고 해서 옥녀봉이라
이름 붙인 경우도 있다.
우리네 산이름 짓기 심성이 잘 엿보이는
김해 장유면의 주민 이야기다.
의인화된 산이름을 가장 많이 가진 나라는
동아시아는 물론 구미와 비교하더라도
한국일 것 같다.
처녀산이라는 뜻을 알고 나서 융프라우와 옥녀봉을 바라보면 산이 다르게 보일까.
스위스의 구조주의 언어학자 소쉬르(1857~1913)는 언어의 속성을 기호체계로 정의했다. 기표와 기의가 결합되어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융프라우와 옥녀봉은 산이라는 지형과
처녀라는 의미가 뭉뚱그려져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산이름의 기표를 듣거나 보면서 마음속으로는
처녀라는 기의를 같이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김춘수 시의 ‘꽃’처럼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두 산은 젊은 여인의 이미지로 변신한다.
이제 융프라우와 옥녀봉은 그냥 산이 아닌 것이다. 젊은 여인의 산인 것이다.
■ 처녀 산신의 질투와 변덕이 닮아
옥녀봉은 처녀 이미지로 변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집단공동체의 공유지식과 사회윤리의식으로도
발전되고 풍수적인 텍스트로 구성되면서
환경의식이나 태도도 변화시킨다.
옥녀봉이라는 기표는 2차적으로 지명, 설화, 의례, 상징, 풍수 등의 계기적인 기의를 발생시킨다는 데에 묘미가 있다.
경남 함안에 이열(耳悅)이라는 마을이 있다.
귀가 즐겁다는 뜻이다. 옥녀봉 때문이다.
옥녀봉 위에서 옥녀가 풍월을 읊으니 마을사람들이 듣고 즐거워했기에 이름 지어진 것이란다.
옥녀봉 정기를 타고난 유명인사도 등장했다.
원불교의 창시자인 박중빈(1891~1943)이
주인공이다. 고향인 전남 영광 옥녀봉의 정기를
받았단다.
전국 곳곳의 옥녀봉에는 연관된 다양한 풍수 형국도 생겼다. 옥녀가 베를 짜는 형국(옥녀직금형)도 있고 거문고를 타는 형국(옥녀탄금형)도 있다.
옥녀가 머리를 풀어헤친 형국(옥녀산발형)도 있고 아랫도리를 벌리고 있는 형국(옥녀개화형)도 있다.
옥녀봉 아래는 반드시 샘이 난단다. 묘한 성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두 산의 공통점은 또 있다. 융프라우는 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을 품고 보호해 주는 거룩한 산이라는
속담이 있다. 옥녀봉도 지역에 따라 마을을 수호하는 여산신으로 주민들에게 인식된다.
경남 거제의 칠천도에 있는 옥녀봉이 그렇다.
주민들은 이 옥녀봉을 섬의 산신으로 모시고
매년 산신제를 지냈다. 그런데 40여년 전에 동제를 한번 지내지 않았더니 마을에 질병이 나돌아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같은 여자라도 처녀와 할머니가 다르듯이
처녀산신과 할머니산신은 다르다.
노고나 마고와 같은 할머니산신과 달리 옥녀봉
처녀산신은 질투가 많기 때문이다.
처녀산신은 과부나 노처녀의 원령이라서
“시집간 여인이 옥녀봉에 오르면 동티가 난다”는
말도 생겼다.
융프라우의 변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 마을 수호 여산신으로 교훈의 여성상으로
융프라우와 옥녀봉 사이에는 차이점도 크다. 규모와 높이 그리고 모습이 뚜렷하게 다르고, 그럼에도
처녀산이란 이미지로 이름 붙인 사람들의 의식도
크게 다르다.
융프라우와 달리 옥녀봉은 주민들의 삶과 생활 속에 있는 산이란 점도 중요하다. 그래서 산이 지닌 여성성의 의미도 더 다양하고 풍요롭다.
지역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옥녀봉 때문에
여자들이 예쁘고 미녀들도 많단다. 가조도 주민
이야기다.
처자들이 예쁘다고 관기로 모조리
뽑혀가서 산 아래에 있는 옥녀샘을 막아버렸다.
그래서 미인이 안 난단다. 통영 주민 이야기다.
뿐만 아니다. 옥녀봉은 다산을 상징하는 의미로도
나타나고, 순결을 지키는 효녀로서의 교훈적인
여성상도 들어있다.
통영 사량도에 있는 옥녀봉(281m)이 그렇다.
봉긋하게 솟은 모양이 영락없는 옥녀의 자태다.
정상의 둥그스름한 봉우리가 여인의 가슴을
닮았다고도 하고, 산의 지맥이 옆으로 팔을 펼치고 있어서 옥녀가 거문고를 타고 있는 형국이라고도
한단다.
여기에는 이런 애처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첫 딸을 낳은 부부가 오순도순 살다 부인이 죽게
되었다. 홀아비는 외동딸 옥녀에게 정을 붙이며
살았고, 옥녀는 착하고 효성이 지극했다.
그런데 아비는 딸이 커 갈수록 외로웠고,
딸의 성숙한 몸에 깜빡깜빡 딸이라는 사실마저
잊어버릴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밤,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이었다. 아비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결국 딸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착하고 영리한 옥녀는 눈물로
아비를 말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제가 뒷산 먼당바위 벼랑에 올라가
있을 테니 뒤따라 올라오세요. 올라오면서
소 멍석을 둘러쓰고 음메 음메 소 울음을
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저도 짐승처럼 아버지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산꼭대기로 오르는 과정에 격정이 가라앉고
제정신이 들기를 바랐던 딸의 지혜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끝까지 소 울음소리를 내면서
따라왔고, 그 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울던 옥녀는
이내 천길 벼랑 아래에 몸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이 산을 옥녀봉이라 하고, 벼랑 바위
바닥에는 지금도 검붉은 이끼가 피어있어 선혈처럼 보인단다. 근친상간을 경계하는 성도덕의 윤리를
빗댄 설화이다.
옥녀봉 주변의 마을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은 옥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혼례에 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지 않는 것이 오랜 풍습으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두 나라 처녀산의 처지는 달라도
아주 다르다. 스위스의 융프라우는
세계의 미인(세계유산)이 되어 유럽 사람들이라면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로망’이고,
관광자원으로서 경제적인 가치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산 아래 푸른 초원에 흩어져 있는 마을에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춤과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요들송이 울려 퍼지는 낭만이 인다.
그러나 한국의 옥녀봉은 한국 사람도 찾지 않는
노처녀가 되어버렸다. 산 아래는 초겨울 찬 서리에 낙엽 지듯 비어가는 집들과 젊은이는 모두
빠져나가고 고령화된 주민들만 쓸쓸하다.
■ 잊혀져 가는 옥녀봉에 담긴 이야기·콘텐츠
옥녀봉이 지닌 숨은 가치는 우리가 발굴해야
하지 않을까.
전국의 수많은 옥녀봉에 담겨 있는 이야기와
콘텐츠는 풍부하다. 그런 옥녀봉이지만
지금껏 주목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요즘처럼 별의별 지역축제에 옥녀봉 축제라도
하나 만들면 어떨까(유일하게 2004년부터
사량도에서는 옥녀봉등반축제가 개최되는데
정작 주인공인 옥녀봉은 뒷전이고 등산에
초점을 맞추는 행사다).
곳곳에 있는 옥녀봉을 강강술래하듯 연결하여
옥녀봉 술래길이라는 루트를 만들면 또 어떨까.
전국에 수백개가 넘을 옥녀봉을 모두 조사하여
옥녀봉 사전과 지도를 만들어도 재미있지 않겠는가.
아직 어디가 어딘지 지도상에 오르지도 못한
옥녀봉이 숱하다. 하루바삐 조사하여 이야기를
채록하지 않으면 마을사람들의 삶 속에서 애환을
같이했던 정겨운 옥녀봉도 영영 잊히고 말 것이다.
그럴까봐 해가 갈수록 노처녀 마음처럼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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