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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간신(姦臣)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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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5 10:04 조회4,5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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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간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世未嘗無姦臣也). 임금이 간신의 술수에 빠지면 나라는 패망하고 만다.”

<고려사> 편찬자들이 ‘간신열전’을 쓴 이유다. 간신은 언제나 똬리를 틀고 있기 마련이지만 군주가 똑똑하면 절대 발호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당나라 현종은 초기에는 명재상을 잇달아 기용함으로써 ‘개원지치’의 태평성대를 이뤘다. 특히 한휴 같은 재상은 황제가 조금이라도 엇나간다 싶으면 득달같이 나서 ‘아니되옵니다’를 외쳤다. 몸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였다. 보다 못한 측근이 “귀찮은 한휴를 몰아내면 좋지 않으냐”고 건의했다. 그러나 현종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아닐세. 짐은 말랐지만 백성은 살찌지 않았는가.” 그러나 초심을 잃은 현종의 말년엔 간신이 득실거렸다. 예컨대 현종이 안록산의 뚱뚱한 배를 보고 “대체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냐”고 물었다. 안록산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예. 폐하를 향한 일편단심(赤心)이 가득 차 있사옵니다.” 그렇게 ‘일편단심’ 운운했던 안록산은 15만 대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당서> ‘안록산전’).

 폭군인 수 양제에게 아첨했던 배구(557~627)는 당나라에서 충신으로 거듭났다. “사람이 한결같아야지 뭐하는 짓이냐”는 비판에 시달렸다. 그러나 <당서> ‘배구열전’의 평가는 달랐다. “군주가 직언을 즐거워하면 아첨이 충성으로 변한다. 형체(임금)가 움직이면 그림자(신하)가 따라 움직인다.” 역사가는 “배구가 간신에서 충신으로 변한 것은 군주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문제는 어리석은 군주는 간신과 충신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나라 덕종에게 간신 노기가 있었다. 덕종이 어느 날 신하들에게 “모두들 노기더러 간신이라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귀엽기만 하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때 어떤 이가 명쾌하게 답변했다. “(노기가 간신인 것을) 폐하만 모르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노기가 간사하다는 증거입니다”(<당서> ‘이면전’).

 자고로 “나라를 망치는 것은 소인 하나면 족하다”(<송사> ‘유일지전’)고 했다. <역경>은 “나라를 창업하고 집안을 잇는 데는 소인을 써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집권 초기의 당 현종 이야기가 심금을 울린다. “내 멋대로 할 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한휴 같은 재상이 있으니 두 다리 뻗고 편히 잘 수 있다.” 만약 지도자가 밤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라면 어떨까. 주변에 간신이 득실거린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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