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가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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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9-25 17:44 조회107회 댓글0건본문
지난 1월 19일 발생한 서부지방법원 사태는 사법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법원에 시민들이 난입해 폭력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런데, 소승에게는 다른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멀찌감치 떨어져 사태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법원 내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자기의 폭력행위와 함께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폭도들의 머리 위로는 휴대전화를 끼운 촬영용 막대들이 무수히 흔들리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때 중계한 유튜브 영상이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니, 자승자박이라고 해야 할지,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자기 발등을 찍은 그 생중계는 구독자 수 늘리기나 동시접속자 확보, 슈퍼챗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자기과시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유야 어쨌든, 그전까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전대미문의 모습이었다. 가히 소셜미디어의 시대를 극명하게 보여준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유튜브를 포함한 소셜미디어가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온 지는 꽤 오래됐다. 대안언론으로서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과시하기도 하고, 어떤 유튜버는 웬만한 고액연봉자보다 수입이 많다고도 한다. 소셜미디어에 무심코 올린 한마디로 인해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국민은 94.7%가 소셜미디어를 사용하고 있다. 상장 코인 회사는 515개로 일본의 69개에 견줘 엄청나게 많으며, 일일 거래량은 39억 3,700만 달러(약 5조 5,000억 원)로 일본의 3억 1,100만 달러와 비교해 10배 이상 많다.
또, 어떤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1인당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이 일본의 세 배가 넘는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소셜미디어를 많이 이용하는 등 디지털 문화에 더 친숙하고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 정보가 쉽게 유출·공유되는 상황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디지털 문화가 발달한 한국이 다국적 범죄 조직의 주요 타깃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엔 예스24, SK텔레콤, KT에 이어 롯데카드가 해킹당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가 기관의 서버들도 해커들이 제집 안방 드나들 듯이 했을 거로 추측하는데, 대부분 기업체와 국가 기관이 정보 보호 국제 표준을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방심이 부른 인재(人災)다.
이재명 정부는 AI 산업을 미래 핵심 먹거리로 선정하고 천문학적인 개발비를 쏟아부을 계획이다. 그런데 개인 정보 보호나 방호 체계에 대한 대비, 거기에 더해 디지털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 배양 없이 진행하면 정말 큰 일이다. 안 그래도 AI의 부작용에 대한 지적이 많다.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너야 하는 법이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영순위가 유튜버라고 한다. 다른 나라도 다르지 않아서, 프랑스는 청소년들의 휴대전화 사용 시간을 법으로 강제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그래야 하지 않겠냐 하는 일부 움직임이 있다. 오대산 빈승(貧僧)의 귀에까지 이러한 소식이 들려올 정도면 임계점을 훨씬 넘었다는 증거다.
요즘 절간에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수행을 위해 세상 모든 인연을 끊고 심산유곡으로 들어갈 게 아니라 와이파이만 끊으면 된다고. 번잡한 가운데 고요함을 깨쳐야 하고, 넘치는 가운데 만족을 알아야 한다. 부처뿐만 아니라 모든 선현(先賢)이 그렇게 말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정보와 관계 속에서 마음자리를 청정하게, 굳건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럴 때일수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 한다. 어떤 광고 말마따나 “내 삶을 업데이트하는 게 아니라 남의 삶이 업데이트되는 걸 지켜보는” 게 우리 삶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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