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갤러리> 갤러리

갤러리

강원일보 기고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0-26 17:07 조회28회 댓글0건

본문

양10월26일 강원일보 기고문입니다.

89e99fe05ec10e4bd2d1a4da4f0b1567_1603699

 

 


강원일보 2020 10. 26일자

 

'일생패궐''이생망'

 

원행 월정사 선덕 스님

조계종 원로의원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는 줄임말을 사용하는 게 유행이다. 우유남(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남자), 내또출(내일 또 출근한다) 등 줄임말이 아니면 대화가 힘들 정도다. 그러다가 다음과 같은 줄임말을 접하면 눈앞이 캄캄해질 수밖에 없다.

 

'자낳괴'. 청년들이 자신을 이르는 말이라는데,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라는 뜻이다. '이생망'은 또 어떤가? '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인데,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 해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스스로 괴물이라 칭하고, 이번 생은 망했다며 자조하는 우리나라의 청년들. 흔히 청년을 미래라고 여기는데,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는 셈이다.

 

이처럼 청년들이 극심한 자괴감에 빠지게 된 데에는 지금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 힘들게 일해도 임금 상승률은 집값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평생 일해서 번 돈으로는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렵다. 기술의 발전은 언제 내 일자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은 '열심히 사는 것'보다 대박을 터뜨릴 재테크에 몰두하고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청년들이 '엄빠(엄마 아빠)'의 돈과 인맥과 능력으로 좋은 대학과 직장에 들어가고 증여로 '내 집'을 갖는 동안, 대다수 청년은 공시에 매달리고 최저 시급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벌고,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조금이라도 높은 랭킹의 대학과 직장을 찾아 이동하다가 이제 '영끌 개미'가 돼 금융자본주의의 떡고물을 얻기 위해 다른 노력을 하지 않으려 한다. 비트코인 열풍도 그중 하나다. 그러다가 이번 생을 포기하는 탈락자들이 생겨난다.

 

청년들은 이런 '대박(을 기대하는) 재테크'가 망한 세상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동아줄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 썩은 동아줄일 확률이 높다. 뼈아픈 이야기이지만, 우리 기성세대는 이 세습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과 차별 없이 연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

 

1876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난 한국 불교 최고의 고승대덕(高僧大德) 한암 스님은 자전적 구도기를 한 권 남기셨다. 이 저서는 한암 스님의 생애와 사상, 오도(悟道) 과정 등을 자서전 형식으로 적은 것으로, 20, 길이 120의 한지에 만년필로 적은 두루마리 본이다. 서체로 볼 때 한암 스님이 구술하고 수제자인 탄허 스님이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제목이 '일생패궐(一生敗闕)'이다. 번역하면 '이번 생은 크게 망했다'이다. 이번 생은 크게 망했다? 청년들의 자조 섞인 줄임말 '이생망'과 같으니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뜻은 정반대다. '이생망'이 절망과 좌절을 이야기하는 반면, '일생패궐'은 긍정의 힘을 내포하고 있다.

 

한암 스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번 생은 망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사계절 순환처럼 내 일상도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숨을 쉬고 있다. 계절의 반복처럼 나는 수없이 실패하고 절망하고 비통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번 생은 망했다'라고 낮게 읊조리며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걸을 것이다라고 포효하셨다.

 

끊임없이 지고 또 져서 자신을 넘어서기. 그리고 마침내 만나게 될 자유. 참패 선언이 제대로만 이뤄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대성공이다. 이런 '망한 세상'을 만든 기성세대로서 몹시 부끄럽지만, 청년들에게 권하고 싶다. 역설의 힘을 믿자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