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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의거 109주년 하얼빈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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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11-02 15:50 조회3,9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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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의거 109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에서 남북 대표단이 합동미사를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노지원 기자

 

황해남도 해주시에 있는 안중근 의사 생가와 청계성당을 복원해 기념관과 기념공원을 만들자고 북쪽에 제안합니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충석 신부는 26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의거 109주년 기념 남북 공동행사에서 이런 뜻을 밝혔다. 이날은 19091026, 안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일제의 조선 식민지화의 주역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꼭 109주년이 되는 날이다. 안 신부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북쪽 관계자들에게) 해주시의 안 의사 생가와 안 의사가 살아생전 사무장을 지낸 청계성당을 복원해 기념관과 기념공원을 건립하는 안을 제안했다북쪽과 협의해봐야 하겠지만 내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쪽을 방문하면 머릿돌에 축성을 받아 성당과 생가 건축을 시작하면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2019년에 남북이 공통으로 존경하는 독립운동가인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되살려 분단 70년이 약화시킨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겠다는 취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내년 북한과 공동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안 의사의 유해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다롄 뤼순감옥 인근 지역에는 이미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사업이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안 의사 생가와 성당 복원 사업은 남북이 합의만 한다면 추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높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와 북쪽 조선종교인협의회(회장 강지영)252723일 동안 함께 연 이번 공동행사에는 강 회장, 김철웅 장충성당 회장, 허일용 조선카톨릭교협회 중앙위원회 서기장 등 북쪽에서 4명이 참석했다. 남쪽에서는 기념사업회 회원을 비롯해 전남 지역 고교생, 안중근청소년오케스트라 등 80여명이 참여했다. 강 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안 의사의 의거는 일제에 대한 우리 인민의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었다도마 안중근 열사가 지녔던 애국의 넋을 깊이 간직하고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실천 활동에 적극 떨쳐나섬으로써 북남관계 발전과 자주통일 실현에 특색 있게 이바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북한 노동당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을 지냈고 현재 조선카톨릭교협회 중앙위원회 위원장,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함께 맡고 있다. 통일전선부 부부장, 최고인민회의 13기 대의원이기도 하다.

 

26일 남북은 합동 미사를 진행한 뒤 하루 종일 하얼빈시 곳곳을 방문하며 안 의사의 자취를 밟았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정율성 기념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뒤 구금됐던 일본영사관 옛터(현 화원소학교), 일제가 생물·화학 무기를 개발하고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731세균부대 등을 방문했다. 27일에는 동북항일열사기념관을 방문한다.

 

남북의 두 단체는 2009년 개성에서 안 의사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으로 공동행사를 열었고 2011년부터는 의거 현장인 하얼빈시에서 만났다. 남북관계가 악화된 지난해에는 한자리에 모이지 못했지만, 올해 남북 정상이 세차례나 만나는 등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행사가 다시 열렸다.

 

하얼빈/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식서

 

원행스님 종교인에 제안

 

한암·만화스님 매개 남북교류

 

 

도내 사찰에 머무르면서 수행·정진해 한국 불교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큰 스님들의 뿌리 찾기가 남북 교류의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26일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109주년 안중근 의사 의거 기념식'에 참석한 한국 종교지도자들이 북한 조선종교인협의회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건의문을 전달하고 한암·만화 스님 관련 선양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원행 월정사 선덕 스님(조계종 원로위원) 등 종교지도자들은 건의문에서 화천 출신으로 조계종 초대종정을 지낸 한암 스님의 수행터 `평안북도 우두암 복원' 협의와 함께 월정사 중창주 만화 스님의 고향인 `평안남도 덕천군 방문' 등을 요청했다.

 

 

한암 스님은 일제강점기 엄정한 수행가풍을 확립하고 한국 불교를 지켜낸 최고의 선승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서울 봉은사 조실 자리를 내놓으며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오대산에 들어가 27년간 입산정진하다 1951`좌탈입망(앉아서 참선한 채로 열반)'했다. 만화 스님은 6·25전쟁을 거치며 불에 타버린 평창 월정사를 본래의 모습으로 복구한 주역으로 화엄사상을 부흥시키고 근대 한국 불교의 법통과 종통을 계승해 `만화선풍(萬化禪風)'을 수립했다.

 

 

원행 스님은 한암 스님과 만화 스님의 뿌리를 찾는 일이 북한과의 교류에도 좋은 영향으로 작용하길 기대한다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와 조계종, 월정사 등이 함께 북한과의 향후 교류 일정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석기기자

<한암의 불심과 사상>

 

나는 부처님의 제자요. 법당을 지키는 것은 나의 도리이니 어서 불을 지르시오

1876년 화천에서 태어난 한암 스님은 1910년 봄 평안도 맹산 우두암에 들어가 보임(保任) 중에 불을 지피다가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한암스님은 1876년 화천에서 태어났다. 호는 한암(漢岩), 이름은 중원(重遠), 본관은 온양이다. 1910년 봄 평안도 맹산 우두암에 들어가 보임(保任)중에 불을 지피다가 홀연히 35세해의 겨울에 깨달음을 얻었다.

 

한암스님은 1925년 오대산에 들어가 1951년 입적할 때까지 27년간 산문을 나서지 않았다.

 

1951321(음력 214) 아침. 한암 스님은 죽 한 그릇과 차 한 잔을 마시고 손가락을 꼽으며 오늘이 음력으로 214일이지하고는 가사와 장삼을 찾아 입고 단정히 앉아 입적했다. 세수 75, 법랍 54세였다.

 

 

쉰이 되던 1925년 서울 봉은사 조실로 있다가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면서 오대산에 들어갔다. 오대산에 들어와 들고 다니던 단풍나무 지팡이를 중대 사자암 앞뜰에 심었는데 지팡이가 꽂힌 자리에서 잎사귀와 가지가 돋아나와 나무가 되니 중대 앞의 단풍나무가 그것이다.

 

6·25 전쟁이 나자 모든 사람들이 피난을 떠났으나 한암은 상원사에 남았다. 이어 1·4후퇴 때 월정사와 상원사에 올라온 군인들이 상원사 법당을 불태우려고 했다.

 

한암스님은 잠깐 기다리라 이르고 방에 들어가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법당에 들어가 불상 앞에 정좌한 후 불을 지르라고 했다.

 

장교가 스님이 이러시면 어떡합니까하자 한암 스님은 나는 부처님의 제자요. 법당을 지키는 것은 나의 도리이니 어서 불을 지르시오하며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이에 감복한 장교는 법당의 문짝만을 뜯어내 마당에서 불을 지르고 떠났다. 상원사와 국보 상원사 동종을 지켜낸 것이다.

 

 

한암 스님은 경허 스님의 제자로 만공 스님과 함께 일제강점기 한국불교를 이끈 선지식이었다. 1941년 조계종이 결성되자 초대 종정으로 추대됐다.

 

 

일발록(一鉢錄)’ 한 권을 남겼는데 그마저 1947년 봄 상원사에 불이 났을 때 타고 말았다. 1995년 문도들의 뜻을 모아 한암일발록(漢岩一鉢錄)’을 재간행했다. 제자로 보문(普門), 난암(煖岩), 탄허(呑虛)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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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_황건

 

 

개회

 

 

참가자와 기념공연 소개

 

 

인사말

 

-조선종교인협의회 위원장 강지영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부이사장 곽동철 신부

 

-대한불교 조계종 원로의원 원행 스님

 

 

연주(안중근 청소년평화오케스트라)

 

바이올린-주재훈,최진주,최연서,최정우,김민솔,김정현

 

첼로-유재호,김태훈 플롯-한수인.김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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