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단오제(강원일보 양6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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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6-22 11:47 조회1,185회 댓글0건본문
강릉단오제
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의원
6월22일(음력 5월5일)은 단오(端午)다. 수릿날이라고 일컫기도 하고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午節)로 달리 부르기도 한다. 더운 여름을 맞기 전 초하(初夏·초여름)의 계절이며, 모내기를 끝내고 올해 농사가 풍년이 되기를 기원하는 기풍제(祈豊祭)이기도 하다. 1년 중에서 가장 양기(陽氣)가 왕성한 날이라고 해서 예로부터 큰 명절로 여겨 왔고, 조선시대(중종 13년·1518년)에 이르러 설날, 추석과 더불어 ‘삼대 명절’로 불렸다. 2005년 유네스코(UNESCO)에 등재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천년의 전통과 역사를 가진 강릉단오제가 오는 25일까지 8일 동안 강릉남대천 행사장 일원에서 성대하게 펼쳐지고 있다. 물론 강릉단오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주미 봉정이나 대관령 산신제, 대관령 국사 성황제 등은 이미 5월부터 거행됐다.
4년 만에 코로나19 확산의 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나 치러지는 이번 강릉단오제는 액을 막고 복을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단오 보우하사’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고 한다. 시기적으로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한바탕 굿판, 모내기를 일찍 끝낸 서민의 행복, 그리고 시서화 지필묵의 향연, 남대천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물장구 소리, 여성들이 개울가에서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그 옆에서 그네를 타는 풍광의 단오풍정! 올해 계묘년은 윤 2월로 기후변화로 벌써 목화꽃과 진달래가 만발하는 시기다.
옛날 오대산 조실 탄허 스님(1913~1983년)을 시봉하던 시절, 하안거 결제 중에 강릉단오제가 시작되면 스님을 모시고 강릉 나들이를 하곤 했다. 완행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대관령을 돌아 강릉에 내려가면 스님은 가장 먼저 지역의 명망가들을 만나 환담을 나눴다. 대표적인 분들이 명주의원 정순응 박사라든지 오덕수 한의원장, 이범준 국회의원 등이다. 다들 불심이 깊고 동양철학에도 조예가 깊은 분들로 탄허 스님은 이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거워하셨다.
그 후 탄허 스님은 소승을 데리고 단오장 구경을 하셨는데, 스님은 단오장이야말로 중생들의 삶이 한곳에 집약된 곳이라고 하셨다. 인간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어야 하는 희로애락이 이곳에 다 있다고 하셨다. 참다운 진리는 들판에 엎드려 일하는 중생들의 땀 속에 있다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스님은 단오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고 스님을 알아보고 합장하는 불자들에게 일일이 맞절을 해주셨다.
사소한 추억담 같지만, 소승은 우리의 종교와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진리와 정치는 여의도와 용산에만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곳은 상징일 뿐이다. 허기진 백성의 삶 그 한가운데다. 나라의 덩치는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백성의 삶은 오히려 팍팍해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얼마나 힘든지 알아내겠다고 너도 나도 나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내세우고 따지며 주장만 하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을 해서는 절대 알아낼 수 없다. 그렇게 시행하는 정책은 피부에 와닿지도 않을뿐더러 예산 낭비만 초래하게 된다. 단오즈음은 모내기를 마친 후다. 모내기는 절대로 혼자 할 수 있는 노동이 아니다. 온 동네 사람들의 품앗이가 필수다. 다 같이 땀 흘려 모내기를 마친 후 한 상 가득 차린 수리 음식을 먹고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며 단오를 즐기는 것이다. 부디 종교와 정치가 저 높은 곳에서 내려와 땀 흘리고 애쓰는 백성의 삶 한가운데에 자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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