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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절(春分節)에 (도민일보 양 3월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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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3-21 11:07 조회1,1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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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지 않은 곳에 덕이 있다 - 춘분절(春分節)에 보내는 글

 

원행 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2006년 히말라야 산간의 작은 나라인 부탄의 국민총행복지수라는 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한반도의 25%쯤 되는 땅에 인구 80만 정도인 부탄의 1인당 GDP는 당시 3,000달러 정도였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이런 부탄이 2006년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위크의 조사 결과 아시아 국가 중 첫 번째로, 전 세계에선 여덟 번째로 행복한 국가로 나타난 것이다. 2010년 영국 신경제재단(NEF)의 행복도 조사에선 급기야 세계 1위에 오르면서 부탄은 일약 국제사회의 스타가 됐다. 첫눈 내리는 날은 국민 다 같이 풍요를 빌기 위해 자동 공휴일이 된다든가, 전국 교도소에 50명 이상이 한꺼번에 수용된 적이 없다든가, 누군가 자살하면 신문 1면에 오른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국민총행복지수(GNH)라는 개념을 만든 것은 부탄의 4대 왕 지그메 싱계 왕축이다. 물질적인 풍요로 국가를 평가하는 국내총생산(GDP)보단 국민의 실질적인 행복이 더 중요하다, 삶의 질은 문화적 전통과 환경보호,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해 이뤄진다는 생각에서였다.

5대 왕 지그메 케사르 남곌 왕축은 코로나 정국 때 개인재산을 털어 백신을 산 뒤 세계에서 가장 빨리 2차 접종까지 마친 거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탄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질수록 행복도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영국 신경제재단 조사에서 20101위였던 게 2016년엔 56위로,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 순위는 100위권 밑으로 급전직하한 것이다. 그동안 부탄에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부탄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농간 소득 격차가 심해지자 농민들의 박탈감이 커졌고, 의무교육 덕에 대졸자가 늘었지만, 청년들의 일자리는 부족한 탓이라고 한다. 더 중요한 건 2003년 이후 스마트폰이 허용되자 부탄국민들이 자신들과 고소득 국가의 발전상을 비교하면서 행복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물론 국민의 행복을 위한 부탄 정부의 진심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뜻밖의 암초를 만난 셈이다.

불교에서는 분별하지 말라고 한다. 분별은 비교를 낳고, 판단을 낳고, 미혹을 낳고, 노여움을 낳아 결국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 이른다. 마음을 어둡게 해 절망의 근원이 된다. 어디 부탄국민들뿐이겠는가. 우리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 직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60년대 부탄과 별 차이 없는 76달러였다. 지금은 3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이 되었다. 오로지 성장만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덕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배고프고, 자살률은 세계 1위이고, 저출산에 시달린다. 세대갈등도 심각하다. 기후위기 역시 이런 탐진치의 결과다. 소유 외길을 달리다가 다 같이 무소유로 떨어질 판이 됐다. 진짜 심각한 건 이런 위기에도 무감하다는 것이다.

 

올해 321일은 춘분(春分)이다. 추분(秋分)과 같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다. 더도 덜도 치우침이 없는 날로,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곳에 덕()이 있다는 뜻을 품은 절기다. 중용(中庸)과도 일맥상통하며, 본격적인 농사를 앞두고 잠시 자연에 감사하고 준비하는 날이기도 하다.

춘분처럼 균형을 갖춰야 한다. 물질과 정신, 과거와 미래, 좌우 우, ()과 노(), 남과 여, ()과 서(西), 여와 야가 다 그렇다. 우리가 더 불이익을 받는다, 그쪽이 더 유리하다고 다투다 보면 우리 마음에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 깃들기 마련이다. 양보와 배려로써 상생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계절을 배우고 자연을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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