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자후> 행사법문

행사법문

계묘년의 희망 (도민일보 1월27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1-27 11:19 조회1,179회 댓글0건

본문

강원도민일보(2023 01 27 계묘년의 희망)

 


                                                      원행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의원 


 지난 1월 1일, 코로나 때문에 3년간 하지 못하던 해돋이 행사에 많은 사람이 몰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원을 비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다행히 이제 코로나도 거의 잡혀가는 추세라 다시 일상을 회복하게 됐지만, 지난 3년을 거울삼아 인류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깊이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잘 아시다시피 올해는 검은 토끼의 해다. 토끼는 우리 민족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구토지설(龜兎之設)’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걸 보면 토끼가 우리 문화 속에 자리 잡은 연원이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춘추가 고구려에 병사를 요청하러 갔다가 도리어 옥에 갇혔을 때 들은 것으로, 거북이에게 속아서 용궁으로 간 토끼가 자신의 간을 두고 왔다며 용왕을 속여서 무사히 육지로 돌아온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훗날 판소리 ‘수궁가’의 근원 설화가 되었다고 전한다.


‘토영삼굴’이란 말은 토끼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세개의 굴을 파놓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미리 몇가지 대비책을 짜 놓음을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교토삼굴’이 있는데, 모두 사람이 교묘하게 잘 숨어 재난을 피하거나 위기에서 벗어났을 때 쓴다.


음력 정월 첫 번째 ‘묘(卯)’가 들어 있는 날을 상묘일(上卯日)이라고 한다. 이날 새로 뽑은 실을 ‘톳 실’이라고 하는데, 이 실을 지니고 있으면 장수한다는 풍속도 있다. 그뿐만 아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 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시작하는 ‘반달’이라는 동요가 있다. ‘산토끼’와 함께 토끼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노래다. 이처럼 토끼는 번뜩이는 기지로 위기와 역경을 지혜롭게 이겨내는 동물이다. 그래서 바라건대 올해는 지혜로써 상생하고, 지혜로써 화합하고, 지혜로써 발전하는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동안 우리는 지식은 출중한데 지혜는 늘 모자랐다. 지식이 성숙하면 지혜가 될 터인데, 채 성숙하지 못한 지식이 세상사 전면에 나서면서 내면의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다. OECD 국가 중 나쁜 항목은 대부분 우리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더 넓게 내다보면, 올해 무엇보다 중요한 게 기후위기다.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비상을 극복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세상 없는 선진국이 돼도 소용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텍사스 오스틴의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오스틴 공장에 10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의 투자를 진행했는데, 지난 2021년 텍사스에 몰아닥친 한파로 인해 전력과 물 공급이 끊겨 4000억 원이 넘는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텍사스라는 곳이 원래 고온건조한 지역이라 한겨울에도 영상 10도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는데 기상이변으로 인해 꽁꽁 얼어붙은 것이다. 다행히 2∼3개월 후 기온이 회복돼 공장이 다시 정상가동됐지만 앞으로 이 같은 현상은 지구 곳곳에서 더 심각하게 벌어질 것이고, 이미 벌어지고 있다.


기후위기의 비상사태 극복은 힘들어도 해야 하고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눈 앞의 이익 대신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하물며 토끼는 위기를 피하려고 굴을 세 개나 파놓는다고 하지 않는가. 일종의 플랜 A, B, C라고 할 수 있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인류가 굴 하나에 다 웅크리고 있을 수는 없다.


계묘년을 맞아 원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희망을 바라보는 눈길은 같을 것이다. 아무리 권력과 자본의 파도가 거세게 몰아쳐도, 유쾌하게 그 흐름을 비껴가면서 자신의 운명과 삶을 개척해 나가는 토끼의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다. 역사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기록했지만, 그것을 바꾸어 가는 것은 지혜로운 백성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계묘년이 밝은지 벌써 20여일 지났지만, 늦게나마 모든 분의 행복과 건강을 발원드린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