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금도(聽琴圖) (강원일보 양9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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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9-01 10:09 조회1,248회 댓글0건본문
[강원일보 2022. 09. 01]
청금도(聽琴圖)
원행 스님 오대산 월정사 선덕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중국 송나라 휘종(徽宗)은 예술을 극진히 사랑한 황제로 유명하다. 사랑하는 데만 그친 게 아니라 그림, 음악, 글씨에도 솜씨가 뛰어나 그의 작품은 아직도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 휘종은 골동품 수집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옛 그림과 글씨, 청동기 유물 등을 수집해 황실 창고에 저장했는데, 수집품이 너무 많아 재위 기간 내내 창고를 증축했다고 한다.
이처럼 유례를 찾기 힘든 뛰어난 예술가이자 수집가였던 휘종. 그러나 그는 좋은 국가지도자는 아니었던 듯싶다. 1127년 금나라가 쳐들어오자 변변하게 대항 한 번 못해본 채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이렇게 쉽게 패배한 원인은 그의 지나친 수집벽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특히, 수집품 중에는 ‘화석강’이라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돌도 있었는데, 이 돌이 너무 커서 성문을 지나가지 못하면 성벽을 부셨다고 한다. 금나라는 이 무너진 성을 통해 쉽게 진격할 수 있었고 전쟁은 싱겁게 끝났다.
지금 900년 전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휘종이 그린 ‘청금도(聽琴圖)’라는 그림 때문이다. 휘종은 거문고를 좋아해서 전국의 명기를 수집했을 뿐만 아니라 거문고 연주 솜씨도 매우 빼어났다. 신하들을 관객으로 앉혀놓고 자주 연주회를 열었고, 그 모습을 그림으로도 그렸다. 그 그림이 바로 ‘청금도’다.
이 작품은 지금도 ‘경이롭다’라는 찬사를 듣는 명작 중의 명작이지만, 실은 비극이 숨어있다.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신하들이, 백성이 들어주기를 원했지만, 신하들과 백성이 내는 ‘고통의 거문고 소리’는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화석강’을 옮기느라 성벽을 부술 때 “아무리 평시라도 성벽을 부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고언을 흘려버린 채 자신의 예술적 안목만 주장했다. 진귀품을 수집하느라 국고가 바닥났을 때도 귀를 막았다. 들으려 하지 않고, 들려주기만을 원한 휘종의 행동은 결국 망국으로 이어졌다.
윤석렬 정부가 출범한 지 겨우 100일이 지났다. 그런데 벌써 ‘불통’이라는 단어가 언론에 등장하고 국정 지지율은 한때 20% 중반까지 떨어졌다. 여기서 불통이란 대통령과 국민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뜻일 터인데, 원인은 하나다. 초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윤석렬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민의 말씀을 경청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라며 “진영과 정파를 가리지 않고 실력 있는 전문가를 발탁해 권한을 과감하게 위임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대통령 취임 후 100일이 지난 지금 국민의 가장 큰 불만은 소통 부족과 인사 문제다. 취임 초 국정 지지율이 이 정도면 국민은 이미 강하게 말한 셈이다. 남은 건 윤 대통령이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다.
우주 만물은 모두 저마다의 소리를 낸다. 생명의 소리다.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득도에 이른다. 대통령에게 득도는 국정을 잘 이끌어 성공한 임기를 채우고 국가가 안정적이고 발전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헌신하는 일이다. 5천만 국민이 내는 5천만 개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서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다시 ‘청금도’로 돌아가 보자. 만약 연주 석에 백성이 앉아있고, 휘종은 대신 객석에 앉아 백성의 거문고 소리를 들었다면 송나라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남쪽으로 도망가 남송을 세우고 금나라를 형님으로 모시며 근근이 명맥만 유지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디 휘종뿐이겠는가. 유사 이래 모든 지도자는 듣지 않으면서부터 불행이 시작됐다.
부디 대통령은 객석으로 내려와 앉기를 권한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국민이 내는 ‘고통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공감하고 아파하는 ‘청금도’를 그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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