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둔한 사람들과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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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5-09-24 10:24 조회127회 댓글0건본문
끝없이 이어지는
험준한 고갯길을 넘어
붉은 그늘 짙게 드리운 땅으로 간다
충청과 강원 그리고
영남의 경계를 이루었다가
그 경계를 잇고 또 넘으며
끝없이 펼쳐지는 드높은
양백지간의 능선들
노둔한 사람들과
그 훗자손인 내가
오늘 아득한 산등성이를 넘는다
폐위된 왕을 위해
목숨도 몸도 던지지 못한
하여 이름이 같다는 이유 하나로
볼품없는 남도 산자락에 터 잡고
은둔과 불화의 삶을 택한 그들이
사무치게 그리워했으나
끝내 가지 못한 곳
길이 곧 깊은 슬픔이 되는
영월에서 순흥으로 가는 고갯길
그렁그렁한 신음과 울음이
피에 젖은 시간과 이야기들이
그 붉은 사람들이
가로막고 또 열리며 천천히 흘러간다
녹음 짙은 고치령에
어둠 더디게 내리는데
돌아가기도 어렵고
우두커니 서 있기도 어려워
죽는 날까지 길 위를 떠돌던
큰 삿갓과 지팡이 하나에 생을 의지한
늙은 사내가 터덜터덜 지나간다
둔하고 어리석어 미련한
옛사람들도 나도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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