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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돌아보며

신(神)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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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0-01 06:37 조회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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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은 어디에 있을까?

철학적 전통에서의 절대자는

인간에게 고통을 허용하고

그저 바라보거나 정좌하고 심판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무력한 인간을 닳은 신의 모습이

기독교 신학자들에게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바로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에서의 유대인 학살 경험이

그 촉발제 역할을 했다.

미국 보스턴대학교 엘리비젤(Ellie Wiesel) 교수는

자신의 주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Night)을 출간해 크게 주목 받았고,

이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소설에서 자신이 있었던 수용소에서는

장대위에 사람을 배달아 죽이는 형벌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마치 예수가 처형된 골고다 언덕을 연상하게끔

세 개의 장대위에서 사람들을 죽였던 것이다. 

 

 

나치 정권을 반대하고 저항의 목소리를 외치다

39세에 순교한 독일의 신학자가 있다.

디트리히 분회퍼(Dietrich Bonhoeffer).

본회퍼는 당시 시대적 맥락속에서

고통 받는 신의 내재적 속성을 몸서 실천했던 위대한 신학자다.

그는 성서를 진지하게 읽다보면

우리로 하여금 결국

신의 무력함과 신의 고통으로 향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에 본회퍼는 당대 대다수 교회 지도자들이 지지한

나치 정권에 대항하여 예수처럼

기꺼이 고통받는 유대인들과 함께 죽어가길 선택했다.

지금도 신성은 바로 인성과 긴밀하게 연결된 신비한 속성이다.

신성은 절대로 인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 누구나 보유하고 있는 신적인 속성은

우리 자신만 챙기로독 하지 않고

이웃과 연합하고자 하는 영혼의 힘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타인과 함께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

우리를 낮추고 자신을 비워내는 순간

우리는 숨겨진 신성을 회복한다.

티끌 같은 자신의 용돈을 모아

마스크를 기부하는 아이들에게서

이런 거룩한 본성이 빛난다.

 

인류사에 있어서 집단적인 고통의 순간

영혼의 하나 됨을 경험했던 이들은 달랐다.

그들은 패배자로 기억되지 않고,

역사의 물중기를 바꾼 용감한 혁신가로 기억된다.

그들은 인성과 신체가 비참하게 부서지는 순간에도

신성이 가진 연합정신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코로사시대, 종교인, 비종교인 모두

이런 거룩한 본성을 회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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