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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돌아보며

레넌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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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행 스님 작성일19-12-01 14:11 조회3,3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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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그룹 비틀스의 리더 존 레넌은 그냥 가수가 아니었다.

레넌은 무정부주의자 였다.

국가 권력, 가부장적 지배, 성적 억압을 거부했다.

레넌은 반전.평화운동가였다.

각종 반전집회에 참석하여 평화와 인권, 비폭력의 메시지를 노래했다.

피의 일요일’ ‘혁명등은 음악을 통한 정치참여였다.

레넌은 노래하는 혁명가였다.

1980년 존 레년이 암살됐을 때

체코의 예술가들이 추모 포퍼먼스를 벌였다.

프라하 광장에 있던 벽에

레넌의 얼굴과 그의 노래 가사를 그려넣는, 그라피티 예술이었다.

이후 레넌 벽으로 불린 이곳은

1989년 체코 민주화운동 때 시위의 거점이 되었다.

프라하의 청년학생들은

레넌 벽에 공산당 OUT!' '소련 철수!’ 구호를 적고,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당시 구스타은 후사크 정권은

군과 비밀경찰까지 동원하며 레넌 벽을 철거하려 했지만

시민의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후사크 공산정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체코의 벨벳 혁명뒤에는 레닌 벽이 있었다.

지금은 인근의 카렐교와 함께 프라하의 관광 명소로 꼽힌다.

 

상상해 보세요/ 소유가 없는 세상을/ 못할 것도 없지요/

탐욕도 없고 굶주림도 없는 형제애가 넘쳐나는 세상/ 상상해 보세요/

모든 사람이 세상 전부를 공유하는 모습을/ 내가 몽상가라고요/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에요/ 언젠간 당신도 우리와 함께했으면 좋겠네요.”

 

2014년 홍콩에 레넌 벽이 들어섰다.

우산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홍콩 정부청사 옆에 벽돌 벽을 세우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글귀를 적었다.

그러나 프라하와 달리 낙서가 아닌 포스트잇으로 채웠다.

홍콩 레닌 벽은 올해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도 계속 만들어졌다.

정부청사 말고도 전철역 등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지난 1026일 서울에도 레넌 벽이 등장했다.

여의도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여의도역 통로 벽을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포스트잇으로 채운 것이다.

그러나 여의도의 레닌 벽은 다음날 반대파들이 떼어내면서 사라졌다.

레닌 벽은 민주화운동의 표상이다.

하루 만에 무너진 여의도 레닌 벽

이땅의 민주화가 요원하다는 또 하나의 징표다.

한반도에도 하루 빨리 민주화가 실현 되었으면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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