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 지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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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8-01 14:50 조회1,487회 댓글0건본문
갯 지렁이
지렁이는 인간이 밟으면 꿈틀 댄다.
그리고 항의한다.
지렁이는 구도자다.
지렁이의 생존환경은 이렇다.
1. 통풍이 잘되는 베란다 바깥으로 지렁이 집을 옮기자
2. 급여량을 줄이자
3. 달걀껍데기를 모으자(지렁이가 좋아함).
문제는 습도였다.
습기를 올려준 뒤엔 지렁이 태평성대가 열렸다.
채소를 좋아하고 육류는 싫어한다.
마늘, 생강 같은 자극적인 음식,
오렌지껍질, 레몬, 튀긴 음식은 금물이다.
지렁이는 눈, 코, 귀, 팔다리, 이빨이 없다.
삶의 핵심만 남긴 극강의 미니멀리스트다.
누굴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고,
차별하려야 차별할 수 없다.
390만년 전 출현한 인간은 지구를 죽이지만
4억년은 살아온 지렁이는 고요히 지구를 살린다.
낙엽 같은 지표면 유기물을 흙 속으로 가져와
흙과 함께 먹고 식물이 좋아하는 분변토를 눈다.
토양을 수직, 수평으로 끊임없이 쟁기질해
영양과 공기를 순환시킨다.
식물이 뿌리내리기 쉽도록
땅속에 숨구멍을 뚫는다.
죽어서는 식물의 영양분인 질소원이 된다.
주검은 미생물의 활동을 돕는다.
찰스 다윈은
책 ‘지렁이의 활동에 의한 옥토의 형성’에 이렇게 썼다.
“쟁기가 발명되기 아주 오래전부터
이 지구 위의 흙은 지렁이가 경운해왔으며,
인류 역사상 지렁이와 같이 이렇게 중요한 기능을 가진 동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프랑스 과학자 앙드레 부아쟁은
지렁이가 인류문명의 발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흙속의 보물 지렁이’, 최훈근 지음, 들녘)
다윈에 따르면 지렁이는 한해 동안
1㏊(약 3천평)에 분변토 38톤(프랑스 초지)을 만든다.
인간의 유적들은 지렁이가 만든 땅에 파묻혔다.
나는 지렁이교에 입교하고 싶다.
지렁이의 생식은 평등하고 정말이지 화끈하다.
암수한몸인데 서로가 필요하다.
짝짓기한다.
지렁이 몸에 볼록한 띠인 환대를 난포막이 감싸고 있다.
암생식기에서 나온 난자가 여기 담긴다.
머리에 더 가까운 곳에 수정낭이 있다.
짝짓기할 땐 두 몸이
점액성 액체로 뒤덮여 한몸이 된다.
서로의 수정낭에 자신의 정자를 방출한다.
무려 서너시간 동안!
이후 환대가 수정낭 쪽으로 슬슬 올라와
난자와 정자가 결합한다.
환대는 지렁이 몸 위를 움직이는 일종의 지하철,
난자를 먼저 그다음에 정자를 태운다.
지렁이가 이 환대를 스웨터처럼 벗으면
거기서 알이 태어난다.
짝짓기한 둘은 출산 동료다.
지렁이 세상엔 성차별도 동성애 혐오도 없다.
그들은 다만 사랑하며 지구를 구한다.
신은 지렁이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직도 인간이 지렁이보다 나은 존재라고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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