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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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행 스님 작성일18-08-14 09:28 조회3,303회 댓글0건본문
여름은 사랑의 계절이자 죽음의 계절이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자 철저히 버림받는 시절이다.
적어도 매미에게는 그렇다.
비가 적게 와 땅이 단단하거나 콘크리트로 뒤덮이면
애벌레는 땅 감옥에 갇힌다.
나무에 기어오르는 데 성공한 애벌레라고 해도 마찬가지,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천적에게 잡혀 먹지 않고
성충이 되고, 짝짓기에도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 불타는 여름
귀 아프게 울어대는 매미들은
생존 경쟁의 승자로서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절정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다가올 종말의 예고이기도 하다.
짝짓기를 마치면, 죽음의 시계가 짹깍짹깍 작동한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안다.
매미는 결코 죽음이라는 심각성과
무게에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죽는다.
도시의 매미는 땅에서 나왔지만
땅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버려진 휴지처럼, 씹다 뱉은 껌처럼, 담배꽁초처럼
아스팔트나 보도블록 위에 아무렇게나 나뒹군다.
물론 매미가 인간에게
삶과 죽음의 철학을 가르치려는 깊은 뜻으로
그런 죽음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죽는다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저 구르는 나뭇잎, 빈 깡통을 봐,
나뭇잎이 나무에 붙어 있을 때
깡통에 내용물이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거지,
그게 아니면 다 똑같은 거야,
사실 거리에서 차이고 밟히는 건 더 이상 매미가 아니야,
매미였던 것일 뿐이지,
아무도 이 과거 매미에게 관심 두지 않아,
중요한 건 살아 있을 때야.’
정말, 매미가 죽는 방식은 삶의 소중함을 부각하기는 한다.
하지만 매미가 그런 뜻으로 죽었다 해도,
대낮 광화문 한복판에서 배를 까뒤집고
벌러덩 누운 자세로 삶을 마감하는,
‘포르노 죽음’의 적나라함은
아무래도 무모하고, 가벼워 보인다.
그게 매미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해도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조금 미안한 일이다.
장례식은 못 치러 줄지언정
죽을 장소, 땅까지 빼앗아야 했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매미는 도시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우리는 매미로 인해 도시의 여름을 기억한다.
나무, 공원, 숲, 매미 없는 도시는 상상할 수 없다.
매미 울음이 완전히 사라지면,
뜨거운 여름도 끝나고,
사랑도 죽음도 없는 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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