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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돌아보며

노둔한 사람들과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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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5-09-24 10:24 조회1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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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이어지는 

험준한 고갯길을 넘어

붉은 그늘 짙게 드리운 땅으로 간다


충청과 강원 그리고 

영남의 경계를 이루었다가


그 경계를 잇고 또 넘으며

끝없이 펼쳐지는 드높은 

양백지간의 능선들


노둔한 사람들과 

그 훗자손인 내가 

오늘 아득한 산등성이를 넘는다


폐위된 왕을 위해 

목숨도 몸도 던지지 못한

하여 이름이 같다는 이유 하나로


볼품없는 남도 산자락에 터 잡고

은둔과 불화의 삶을 택한 그들이

사무치게 그리워했으나 

끝내 가지 못한 곳


길이 곧 깊은 슬픔이 되는 

영월에서 순흥으로 가는 고갯길


그렁그렁한 신음과 울음이 

피에 젖은 시간과 이야기들이

그 붉은 사람들이

가로막고 또 열리며 천천히 흘러간다


녹음 짙은 고치령에 

어둠 더디게 내리는데


돌아가기도 어렵고 

우두커니 서 있기도 어려워


죽는 날까지 길 위를 떠돌던

큰 삿갓과 지팡이 하나에 생을 의지한

늙은 사내가 터덜터덜 지나간다


둔하고 어리석어 미련한

옛사람들도 나도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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